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나몬 Dec 21. 2020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

나의 ex

순서 매기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사랑에도 순서를 매기곤 한다.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중학생인 쑹청시는 억척스러운 엄마의 잔소리가 제일 듣기 싫은 무뚝뚝한 아들이다. 엄마를 류싼롄(사영환)이라 부르며 반항기가 가득하다. 엄마 류싼롄은 퉁명스러운 아들에게 헌신을 다 바친다. 좋은 밥,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비싼 돈 들이며 사립 학교를 보내고 심리 상담 비용도 거리낌 없이 지불한다. 그런 류싼롄과 쑹청시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왜 모자는 아버지와 같이 살지 않을까? 그렇다. 그녀의 남편 쑹정위안은 게이이다.

쑹정위안은 대학교수로서 어느 연극단의 음악 감독을 도와주며 지낸다. 그렇게 연극단을 도와주던 중 그곳에서 아제(구택)를 만나게 된다. 아제는 연극 단원으로 잡일을 맡고 있었다. 아제는 자신도 모르게 쑹정위안에게 끌린다. 그 둘을 어느새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쑹정위안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선언하며 아제를 떠난다.

아제 : 넌 수학 잘하니까 물어볼께. 1만 년이 얼마나 길까?
쑹청시 : 1만 년 만큼이요.
아제 : 아니, 어떤 사람이 평범해지고 싶다면서 널 떠났을 때
그 사람이 떠난 날부터 하루하루가 바로 1만 년인 거야.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떠난 쑹정위안은 류싼롄을 만나 결혼을 한다. 그 둘은 아들 쑹청시를 낳는다. 어느 날 쑹정위안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쑹정위안은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쑹정위안은 아내 류싼롄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혼하자고 말한다. 류싼롄은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하지만 굳건한 그의 모습을 보고 큰 배신감을 느낀다. 그렇게 류싼롄을 떠난 쑹정위안은 자신이 사랑한 아제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쑹정위안은 암으로 사망하고, 그의 앞으로 남겨진 보험금은 아제의 앞으로 남겨진다. 그 사실에 분노한 류싼롄은 아제에게 찾아가 그 돈을 내놓으라 소리치며 아제를 비난한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쑹청시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게 쑹정위안을 사랑했던 이들은 쑹정위안이 남긴 보험금을 통해 얽히게 된다.

 
쑹정위안은 참 나쁜 남자다. 그렇기에 류싼롄과 아제는 사랑에 빠진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쑹정위안의 이기심으로 상처받은 류싼롄, 아제, 쑹청시의 모습이 참 안쓰럽다. 쑹정위안은 교수라는 사회적 위치와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이고 움츠러드는 시간을 이겨내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이 바로 사랑한 아제를 떠나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그 시간들이다. 쑹정위안이 말한 평범한 삶은 여자와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삶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삶을 사는 동안 쑹정위안은 아제를 잊지 못했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을 때 쑹정위안이 선택한 삶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이었다. 바로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삶 말이다.


류싼롄은 같은 여자로서 매우 안쓰러운 사람이다. 처음에는 아들인 쑹청시를 들들 볶으며 잔소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이 비호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주위엔 그녀를 보듬어주는 사람은 없다. 신에게 값싼 술을 먹으며 하소연을 할 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아들 쑹청시를 잘 키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쑹정위안 : 남들 눈에 행복해 보이는게 뭐가 중요해?
당신은 내 아내로 사는게 정말 행복해?
류싼롄 : 내가 배우고 바뀔께. 그럼 나도 행복해 질거야. 당신도 바뀔수 있고 배울 수 있어.


류싼롄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남편이 게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인다. 그 누가 이런 일을 겪었어도 류싼롄처럼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었다’라고 듣는 것만큼 가슴 아픈 사랑이 있을까?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았지만 쑹정위안을 사랑했던 사실은 없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아제의 연극을 보고 깨닫게 된다. 아제의 연극날이 쑹정위안이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라는 것과, 쑹정위안을 사랑했던 그 시간을 말이다.


류싼롄 :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저한테 좀 알려 주세요.
정말 다 가짜였을까요?
조금도 절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이만큼도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아제라는 인물은 류싼롄에게는 남편을 가져간 변태이며 쑹청시에게는 아빠를 뺏어간 불륜남이자 쑹정위안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다. 이러한 편견을 갖고 보게 된 아제는 알고 보니 엄청난 사랑꾼이다. 아제는 쑹정위안이 죽고 나서도 그를 잊지 못한다. 핸드폰 벨소리, 그가 남긴 책, 집안의 모든 물건, 그가 떠난 병원에 쑹정위안이 가장 좋아한 만두를 포장해가는 등 아제는 쑹정위안을 잃은 슬픔을 그 누구보다 가슴속 깊숙이 품고 사는 인물이다.


쑹정위안 : 감정을 실어야지.
아제 :당신한테 다 줘서 난 남은 감정이 없어.

쑹정위안은 아제의 모든 사랑이었다. 아제는 쑹정위안을 떠나보내고 난 뒤 어딘가 막혀있는 듯 보였다. 분명히 슬픈데 울지도 않는다. 그저 팔리지 않는 연극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다. 15년 전 인기 있었던 연극은 15년이 흐른 지금 아무도 찾지 않는 연극이 되었다. 그러나 아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그날 이 연극을 꼭 선보여야 했다. 그에게는 이 연극이 쏭정위안를 향한 사랑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아제 :당신 누구냐고 엄마가 묻더라.
쑹정위안 :교수, 룸메이트, 극장 동료....
아제 :난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아!
쑹정위안 : 솔직하게 말하면 어머니가 상처받으실 거야.
아제 : 그럴 리 없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쑹정위안 : 어머니한테는 너밖에 안 남았잖아.
아제 : 내가 당신을 좋아해도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쑹정위안 : 네가 솔직하게 말 안 해도 우리는 우리야!
아제 : 왜 우리는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데?
쑹정위안 : 가족을 힘들게 안 하고 걱정 안 시키는 게 우리 책임이니까
아제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왜 엄마가 힘들어?
쑹정위안 : 나도 몰라...하지만 분명 슬퍼하실 거야...말 들어!


쑹청시는 자신의 아빠가 동성애자이자 남자 애인에게 보험금을 준 아빠의 의도가 궁금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상관없다는 듯이 오로지 돈만 요구하는 엄마 류싼롄의 모습이 보기 싫다. 그래서 쑹청시는 아제의 집에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가족을 파괴시킨 아제는 분명히 나쁜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제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닌 그저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도 상관없었던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오해를 푼 쑹청시와 아제의 연극에서 쑹정위안과의 사랑을 깨달은 류싼롄은 쑹정위안에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 영화의 시간적 흐름을 봤을 땐 아제가 먼저 쑹정위안을 사랑했다. 그러나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를 사랑한 시간과 그의 죽음 이후 살아갈 쑹청시, 류싼롄 그리고 아제의 삶이 중요하다. 그를 사랑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잊고 싶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가장 지키고 싶은 순간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아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해를 받는다. 그리고 쑹정위안을 가슴에 묻고 남겨진 삶을 살아간다. 류싼롄과 쑹청시 또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삐그덕 대는 모자관계가 아닌 연극 속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치킨을 먹고 같이 웃으며 길을 걸어간다. 그렇게 가장 사랑한 자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자들은 그 사랑을 기억하며 남겨진 삶을 살아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퓰리처상에 대한 나의 고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