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코인 체인지
한국에서 제2의 도시가 부산이라면 프랑스의 제2의 도시는 리옹이라고 한다. 스위스를 지나 남프랑스로 내려가는 중간에 있던 리옹에 살짝 쉬었다 간다는 생각으로 들리게 되었다. 사실 중간에 중세도시의 느낌이 살아있는 “뤼퓌엉블레”에 가기 위해 넉넉하게 일정을 잡았지만 결론은 그곳에 안 가고 리옹에서만 동네 주민처럼 산책하듯이 쉬엄쉬엄 다녔다. 가려고 열심히 알아봤지만 막상가려지 귀찮아져서 가기를 포기했다. 2년 전이었다면 어떡해서든 다녀왔을 텐데. 세월이 야속하더라. 여행은 정말로 어릴 때 많이 다녀야 하는 것 같다. 서른 즈음의 체력은 열정을 한풀 꺾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었다.
리옹에 오기 전 숙소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가까운 호텔에 머물 것이냐 안락하지만 위치가 애매한 숙소를 고를 것이냐 결국은 고생스럽더라고 안락한 숙소를 선택했다. 리옹에 도착 후 한국에서 열심히 알아간 정보대로 리옹 3일 치 교통권을 구매하기 위해 티켓 뽑는 기계로 향했다. '어떻게 뽑는 거야?'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다시 빙구미가 나올뻔한 순간. 역에 직원으로 보이던 흑인이 나 대신 3일 치의 교통권 구매를 도와주었다. 이럴 때면 언제나 "메르시"라고 외친다. 일단 말이 안 되면 메르시를 외쳐야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다. 숙소에 가려면 중심가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드디어 숙소 방향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은 생각보다 복잡스러웠다. 나와 같은 곳에서 탄 엄마와 딸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때 마침내 내 앞에 자리가 나게 되었다. 난 배낭도 메고, 캐리어도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내 옆에 서있던 꼬마 아이가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여 양보해 주었다. 아기의 엄마는 고맙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몇십 분이 지났을까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제 숙소를 찾아갈 시간. 구글맵에 의존하여 찾아가려는 그때 아까 자리를 양보해 주었던 아이의 엄마가 내가 가야 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주소를 보여 달라고 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분에게 주소를 보여주었고 그분은 나를 숙소 근처까지 데려다 주었다.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했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게 되었다. “메르시 마담!” 그리고는 조금 이따 깨닫게 되었다. 내가 숙소로 잡은 동네는 시설은 깔끔한 대신에 GPS가 잘 안 잡힌다는 것을 만약에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온 동네를 헤매고 돌아다녔을것 같다. 인생도 알 수 없듯이 여행도 알 수 없구나. 결국은 내 인생의 결말도 좋은 곳에 도착할 수 있기를.
기다린지 얼마 안 되어 저 멀리 주인이 보인다.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에게 집 사용 설명을 듣고서는 마실 다니듯이 리옹을 돌아 보았다. 맛집도 찾아 다니고, 열심히 다니려고 했는데 자꾸만 숙소로 들어가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한국인은 역시 신라면이지! 집주인은 내가 있는 동안 아이들이 있는 파리에 갈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꾸 안 가고 집에 머물렀다. 내가 못 믿어웠나보다. 몇 번 물건 사용방법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사용법을 들어도 모든 것들이 낯설어 행동이 미흡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은 이번 호스트만 보내고 파리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숙소에서 시내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는 리옹 시내의 분위기는 경직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서성이는 군인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디 테러라도 났나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군인들이 지키고 있을 때가 더 안전하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었어 그 긴장감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혼자 밥 먹기 어색한 나는 베이커리 카페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빵을 사서 나왔다. 저녁은 빵으로 때워야지.
그 다음 날도 리옹 시내를 둘러보았다. 리옹에 오면 자전거 투어를 신청해서 알차게 구경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혼자서 이곳저곳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적당히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리옹에 전망 맛집이 프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이라고 했다. 귀찮아도 그곳은 꼭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푸니쿨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날은 푸르비에르까지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 직감을 따라야 하는데, 내 앞에 관광객처럼 보이는 무리들이 어디론가 향했다. 결국 그들은 푸르비에르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언어를 못하는 자의 여행 방식은 눈치게임과도 같다. 나와 비슷한 관광객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관찰만 잘하면 반은 성공한다. 기대하고 올라간 전망대 푸르비에르. 하지만 그곳은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아마 큰 감동을 받기에 이곳의 풍경은 내가 봤던 수많은 유럽 그 어느 곳과 비슷했다. 유럽인 듯 현대식 도시 같은 이곳의 풍경은 새로움이 갈급한 나에게는 여행욕구를 일으키는 도시가 아니었다. 그래서 자꾸 숙소에서 먹던 라면이 생각이 나던 곳. 리옹이 미식의 도시라던데 나에게는 라면이 최고의 요리였다. 아마 일행이 있었다면 같이 맛집 투어를 다녔을 텐데 일행도 없는 리옹은 나에게 심심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