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함께 한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야
어릴 때부터 좋아한 동화책이 있어. 다 자라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니, 어린애가 읽기엔 내용이 너무 심오한 거 같아. 책 제목은 ‘떨어진 한쪽, 큰 동그라미를 만나’(쉘 실버스타인 저). 간단한 선과 점으로 그려진 원과 세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단순한 그림의 동화책이지만 내용은 전혀 단순하지 않은 어른을 위한 책이었어.
내용은 완벽한 원에서 떨어져 나온 세모 조각이 자신이 들어갈 딱 맞을 빈 공간을 가진 원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야.
세모 조각은 여러 번 헤맨 끝에 결국 자기와 맞는 빈 공간을 가진 원을 만나게 돼. 그리고 둘은 함께 한동안 이리저리 세상을 즐겁게 굴러다니지. 그러던 어느 날, 세모 조각은 들어간 그 빈 공간보다 몸집이 커져 결국 다시 원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지.
그렇게 홀로 남은 세모 조각은 다시 자신과 맞는 원을 찾아다니다 빈 공간이 없는 동그라미를 만나게 돼. 그 동그라미는 세모 조각한테 말했어.
“나한테는 잃어버린 조각이 없어, 너에게 맞을 공간이 나한테는 없는걸? 넌 나와 구를 수 없어, 넌 아마도 혼자 구를 수 있을 거야”
초반에 결혼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함께라면 다시는 외롭지 않을 줄 알았어. 처음엔 이 사라지지 않는 외로움이 난 내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해 너랑 원활한 소통이 안되서인 줄 알았어. 그래서 열심히 더 공부해서 프랑스어 실력을 높였는데도 여전히 외로운 거야. 그리고 깨달았어. 이건 깊은 소통의 문제가 아니었어. 그 외로움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나와 함께 태어났다는 걸. ‘날 완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어. 나와 혼자 잘 지내는 법을 모른다면 그 누굴 만나도 외로울 거야.’
이래서 어릴 때 골라주는 책이 참 중요해. 4살 때 읽은 동화책이 30년을 훌쩍 넘어 영감을 줄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난 너와의 결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 결혼을 완결시킨 거지. 이 책처럼 말이야. 이제 나는 혼자 구를 수 있는 원이 됐고, 네가 들어올 공간이 남지 않았어. 너도 곧 혼자 구를 수 있게 될 거야.
이제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자. 동화처럼 향기로운 꽃냄새가 아닌 현실에선 씁쓸한 탄닌이 올라오는 와인 냄새를 맡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