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전남편과 이혼여행 D-5

마지막 시댁 방문

by 키케

“시아버지가 물려주신 그릇들인데 이 중에서 좀 골라보렴, 리모쥬에서 만든 그릇들인데 유행을 타지 않을 거야, 내 결혼식 피로연 때 쓴 그릇들인데 보다시피 난 그릇이 너무 많잖니”


시어머니는 마치 내가 계속 프랑스에 머물 것처럼 말하시며, 당신이 결혼하실 때 물려받은 그릇들을 나에게도 물려 주려 하셨어


“어머니, 정말 이쁜 그릇들이네요, 어차피 니콜라 집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이 그릇은 다 가져가긴 어려울 거 같아요, 당분간 손님 치를 일도 없을 거 같고요”


“그럼 골라만 두렴, 내가 니콜라 방에 가져다 둘 테니까”

시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으셨어. 그리고 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릇들을 눈으로 훑어보곤 거실로 쏙 들어갔지. 아무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이 대화가 문제란 걸 모르는 게 너의 문제기도 해. 더 이상 이 주제의 요점을 빙빙 피해선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결국 혼자 정면 돌파하기로 결심했어.


“니콜라는 크리스털 잔이 더 필요할 거 같아요. 잔들 이쁘네요, 올여름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글쎄 니콜라가 수년 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받은 뱅쇼용 플라스틱 잔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갖다 버리라고 했죠. 오래된 플라스틱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아시죠? 그래서 제가 바로 모노프리 가서 다시 다 샀어요, 잔이며, 그릇이며, 접시며, 주방집기며. 이렇게 많은 그릇이 있단 걸 사기 전에 알았으면 참 좋았을 거 같아요. 그럼 부엌 수납공간이 넉넉했을 텐데 말이에요”


시어머니가 대답하셨어


“내가 볼 땐, 니콜라가 코로나 동안 혼자 오래 있어서 우울증이 걸렸던 거 같아. 이번엔 언제 갔다 돌아오니?”


난 대답했지


“이번에도 들어가면 좀 오래 있을 거 같아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사업하는 동안 계속 떨어짐이 반복될 거고요. 그리고 프로젝트에 따라 제가 얼마나 한국에 있을지 미리 예측하기도 어려워요.”


“프랑스에서 다시 CDI(정규직)으로 일할 생각은 없는 거니? 꼭 한국에서 일해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또, 연애 초부터 듣던 이 질문을 들어야 했어. 너와 첫 만남부터 꾸준히 들어온 질문. 난 이 질문이 늘 난감했고, 지금은 더 난감해.


“어머니, 전 회사만 3개예요. 당장 한국에 있는 회사를 정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프랑스에서 CDI(정규직)으로 일한들 최소 임금, 기껏 잘해야 그보다 좀 더 받을 텐데, 이 부분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전 한국에서 CDI(정규직)을 고용하는 CEO에요. 왜 제가 제 사회적 위치와 미래의 가능성을 다 포기하면서 프랑스에서 살아야 하죠? 되려 아직 직장이 없는 니콜라가 한국에 들어오는 게 맞죠.”


“내 아들은 당분간 프랑스에서도 다시 일하기 어려운 시국이잖니. 한국말도 못 하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일을 하겠니”


“그럼 결국 니콜라는 프랑스에, 저는 한국에 남는 게 서로를 위한 길이에요. 사는 곳을 합의 보지 않는 이상 이혼은 불가피해요.”


시어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셨어.


난 알아. 시어머니는 절대 널 한국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시다는 걸. 너와 내가 이혼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야. 유감인 부분이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해. 서로 자기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건 매우 인간다운 부분이니까.



“제가 화요일에 급하게 내야 할 사업 자료가 있어서 예정대로 점심식사 후 파리로 돌아가야 할거 같아요”


“난 이해가 안 가는구나, 어떻게 일요일에 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어?”


금요일부터 일요일, 3일 동안 옴짝달싹 못 한다는 것이 부담됐지만 마지막 시댁 방문이니만큼 최선을 다하려 했어. 그런데 단 반나절의 시간을 따로 가지길 원했는데 그조차 존중되지 않는단 점이 난 마음이 편치 않더라.


“우리랑 같이 점심 먹고, 아이들과 같이 공원 산책하고 돌아온 후, 저녁 먹고 파리로 출발해도 21시면 도착할 텐데, 뭐가 그리 급한지 난 이해가 안 가는구나, 심지어 일요일이잖아!”


시아버지는 우리가 월요일 아침까지 안된다면 적어도 일요일 저녁까진 머물다 가길 원하셨고, 그러기 힘든 이유가 당신에게 이해가 안 가시자 평소처럼 점차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셨지.

그리고 넌 또 나만 두고 부엌으로 들어가더라고. 나 혼자 외국어로 각각 박사학위 가지신 교수님 두 분께 설명드리려니 어렵다 어려워.


“문화 차이가 커서 이해하기 힘드신 점 알아요. 하지만 한국과 프랑스는 7시간 시차가 있고, 한국 시간으로 화요일 제출이면 전 적어도 화요일 새벽까지는 일을 마쳐야 해요. 한국은 이런 자료를 프랑스처럼 미리 충분한 기간을 두고 요청하지 않아요. 1주, 많이 줘야 2주 전에 알려주는데 전 이번 주 초에 전달받았어요. 자료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부족해요”

“아니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이 어딨어! 노동고용부에 신고당해야 싸지! 그렇게 중요한 자료를 늦게 달라는 요청은 네가 잘 거절해야지!”


“아버님, 스타트업 CEO들은 사업 초반엔 다 이렇게 일해요. 적어도 한국에선 그래요. 더더욱 공휴일에 직원에게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떻게 설명을 해도 노동권이 매우 발달한, 프랑스 대학 교수 공무원으로, 평생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신, 너의 부모님을 이해시켜드리긴 어려웠고 난 계속 점차 복도 구석으로 몰아세워지는 느낌에 참 난감했어.


그나마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일을 하는 소피가 부엌에서 샥슈카를 만들다 뛰어나와, 손에서 토마토 국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나 대신 대변해 주더라.


“아빠, 그만해요. 이레는 정규직 직원이 아니잖아요. 이제 막 만들어진 스타트업 CEO에요.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스타트업 CEO들은 저렇게 일해요. 심지어 이레는 시차 때문에 거의 24시간 내내 잠도 못 자며 일하고 있다고요!”


나를 위한 저 해명이 마지막만큼은 소피가 아닌 너의 입에서 나오길 바랬는데 말이야. 내 사업이 너의 가족 산책보다도 무게가 없어 보여서 난 속상하더라.


내가 멍청했지. 차라리 진통제를 끊고 엊그제 다친 발목이 너무 아파 공원 산책은 무리라 할 걸. 이러니 내가 고양이는 돼도 여우는 못 되지.


@lea.yire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