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비행기 표가 취소되었다고 뜨는데요?”
“네? 그럴 리가요. 전 비행기 시간이 변동되었다는 안내 메일만 받았고, 취소됐단 메일은 못 받았는데요?”
“일단 전산상에는 그렇게 뜨네요”
너무 당혹스러웠어. 파업으로 인해 비행기를 놓친 경험이 한 번 있은 후로, 내 3대 악몽 중의 하나가 비행기 놓치기인데 이번엔 실황이 될 거 같았거든.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이미 우왕좌왕의 연속이었지. 이혼 후 정말 귀국하는 예비전부인을 마중 나온 예비전남편 니콜라는 애써 멀쩡한 척하지만 전혀 멀쩡 해 보이지 않았고, 차를 어디 주차했는지 혹시라도 까먹을까 난 걱정돼서 주차장 번호를 찍어 문자로 보내 뒀어.
그리고 전자항공권에 적힌 대로 터미널 2F에 오니 터미널이 2B로 변경되었다고 하더라. 무엇하나 정확하게 아는 게 없어 보이는 안내요원이 이대로 쭉 걸어가시면 2B 터미널이 나온다고 대답했고 일단 ‘프랑스인이 하는 모든 안내’는 의심하고 보자는 내 신념에 따라 얼마나 쭉 걸어가야 나오는지 구글맵에서 확인 해 보니 족히 1km는 넘는 거리였지.
바로 다시 뒤로 돌아 주차비를 2번 내가며 겨우겨우 2B 터미널에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내 예약이 취소됐다니?
15년간 프랑스에 살며 정말 다양한 항공사 비행기를 타봤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어.
일단 심장은 덜컹 떨어뜨렸어도 정신은 유지하며 다시 한번 차분히 물었어.
“그럼, 한국행 항공권도 같이 취소됐는지 확인 가능하실까요? 한국 항공권만 유효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프랑크푸르트행은 따로 발권하게요”
“잠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 아! 한국행 항공권은 유효하네요, 그리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표도 같이 확인됐습니다. 취소가 안됐네요 전산상 오류인 거 같아요”
“네? 다시 한번 말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잘 안 들려요!”
마스크와 가림막에 차단된 소리는 나의 프랑스어 듣기 실력을 C1에서 족히 B1까지 하향시켜 버렸고
요즘은 늘 되묻기 일상인 참에, 네가 카운터 직원의 말을 다시 정리하여 전달해 주었어.
“프랑크푸르트행 티켓이 유효하다고 확인됐어요, 발권 가능합니다.”
니콜라를 통해 다시 전해 듣고는 족히 15분 전쯤 바닥에 떨어뜨린 심장을 다시 주워 담으며 난 대답했어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탑승 수속을 하며 PCR 검사, 백신증명서, 자가격리 면제 증명서 등 각종 증명서를 제출 한 뒤에 캐리어 무게를 잴 수 있게 되었고 와인 6병, 향수 1병, 위스키 2병으로 채운 나의 큰 캐리어 무게는 22.7kg이었어. 역시 내 오랜 여행 짬은 정확했지.
그리고 오늘도 티셔츠를 갈아입을 때 묵직한 어깨 통증을 63일째 느끼며 나는 10kg 캐리어를 캐비닛에 들어 올릴 상태가 아님을 확인했고, 추가 비용을 내더라도 기내용 캐리어도 그냥 붙이기로 결정했어. 도저히 4번 들었다 내릴 자신이 없더라고.
“음… 진짜 붙이시겠어요? 짐도 없어 보이는데 왜 붙이려 하세요? 그게 가격이 250유로라 너무 비싼 거 같아 정말 권하고 싶지 않네요”
친절한 직원은 다시 한번 되물었고
“그게… 백신 맞은 다음 날 팔 통증이 여전해서 캐비닛에 캐리어를 못 집어넣을 거 같아서요”
“오… 저런! 얼마나 되셨는데요?”
“2달 지난 거 같아요”
“너무 안됐네요. 꼭 회복하시길 바랄게요. 전산상 오류도 있고, 오늘 탑승객 수도 많지 않으니 그냥 무료로 인천공항까지 붙여드릴게요. 친절하게 기다려 주신 보답이에요”
“정말요? 세상에.. 정말 감사합니다”
프랑스 사는 15년 동안 처음 겪어보는 일이 오늘 참 많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말이야. 아까 너무 놀라 뭘 먹든 체할 거 같은 기분에 마지막 점심 대신 라테를 마셨고 그마저 시간이 부족하여 급하게 마시곤 출국장으로 난 떠났지.
울컥한 기분에 눈물이 날 거 같지만 참았어. KF94 마스크가 하나라 축축하게 적시면 곤란하거든.
최대한 잘 감당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