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5 결혼사유 2
“아기를 키우려면 한국하고 프랑스 중 어디서 키우는 게 좋을까? 일단 이 동네보단 지방 소도시가 나으려나? 쀼또는 어때? 생제르맹 엉 레도 살기 좋아 보여”
“인종이 다양한 대도시가 좋을 거야. 지방 소도시는 아시아인이 적어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어”“자기는 어땠어? 릴에서는 말이야.”
“프랑스는 공립 고등학교보다 사립고나 가톨릭 고등학교가 교육의 질이 좋아서, 가톨릭 고등학교를 나왔어”
묘하게 질문 의도에서 빗겨나간 너의 대답. 말하기 싫은 무언가가 있는 걸까 나는 너의 대답을 순순히 넘겨 받았어. 말할 시간은 앞으로도 많으니까. 꼭 지금 당장일 필요는 없겠지.
우린 아직 결혼을 어디서 할지도 못 정했으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지. 혼외 자녀 비율이 51%인 프랑스에서 결혼이 아이를 낳아야 할 자격조건이란 의식도 없었지만 말이야. 마찬가지로 결혼이 우리 사이를 굳건하게 해줄 거란 생각도 없었고. 이건 기가 막히게 증명됐지. 그러던 나에게 프랑스인과 아이를 낳게 된다면 결혼을 꼭 해야겠다 다짐하게 된 사건이 생겼어.
겁 많은 고양이지만 용케도 지역 아름다운 고양이 콘테스트에 나가 대상을 탄 루루의 집사인 루카와 마리 커플.그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났어. 붉은 머리 엄마의 피는 어디서 누수가 생긴 건지 아빠 루카만 쏙 골라 닮은 금발의 파란 눈 아기. 분명 유전자는 반반 섞였을 텐데 둘 중 하나만 닮아 나오는 애들을 보면 참 신기해. 그러고선 부모가 다른 형제를 편애한다고 자식들은 궁시렁거리지.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한 쪽 편만 들고 태어났으면서. 부모를 편애하는 자식은 아무도 탓하지 않는 게 이상해.
해는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해가 있는 프랑스 북쪽 지방 지역. 그 지역 출신 루카와 마리. 이 커플의 집은 파리 속 슈티미*들의 아지트였어.
“아니 그래서, 너네가 이번에 고양이를 들였다는 거야 개를 들였다는 거야?”
“루카, 커**라고 캬***가 아니고! 그치? 레아? 개를 데려왔단 거지?”
프랑스어로 개는 시앙, 고양이는 샤 아니었나. 같은 프랑스 지방이지만 슈티 지역의 방언은 어렵기가 제주도보다 더 심해 알아듣기 어려웠지. 그렇지만 원래 내 친구였던 것처럼 다가가기 편한 그들이 좋았어. 주인이 없어도 지나가다 문을 열고 맥주를 마시고 갈 수 있었던 그 집에서 누군가 쫓겨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었지.
모든 불행은 어느 날에 시작해. 미리 알리면 불행의 당사자들이 무대에서 도망이라도 갈까 노심초사하는지 섭외를 당일에 하더라. 늘 어느 완벽한 아침에 들이닥쳐.
출근길 올림픽대로가 꽉 막히듯 파리의 외곽 순환 도로 뻬릭뻬릭도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어. 미끄러지듯 제시간에 회사 차고로 들어가고 싶었을 루카의 바이크는 미끄러져 터널 벽에 처박혔고, 루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지.
“이 정도 사고에서 죽지도 않고, 뇌도 안 다쳤다니 천만다행이에요” 손가락 끝마디까지 사지가 조각 난 루카에게 의사가 건넨 뼈아픈 조언이었데.
매 주말이나 저녁에 파리에서 운전하기 무서워하는 마리를 니콜라가 병원에 데려다줬고 나는 집에서 엄마를 대신해 막 2살 된 줄리를 돌봤어. 그렇게 번갈아 친구 가족의 공백을 대신 매우며 루카의 퇴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토요일 밤 루카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어.
슈티미 : 프랑스 북부 지역 사람들을 칭하는 말
커 : 슈티 지역 방언으로 개
카 : 슈티 지역 방언으로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