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 3

하염없이 피고 지는 꽃

by 키케

태어나자마자 날 응급실 신세를 지게 했던 폐, 늘 비염에 시달리는 코, 피곤하면 약해지는 귀와 입의 점막들을 중심으로 감염이 있었고 다리에는 혈전들이 여기저기 퍼져 붉게 멍울졌어. 난 10일 동안 고열에 시달렸는데, 그 멍한 와중에도 신장 기능은 멀쩡한지 소변 색을 살피고, 내가 마신 수분량과 빠진 수분량을 변기의 수면 높이로 가늠해 체크하고 있더라. 누구한테 기대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가 조금은 약해진 마음에 친구들에게 어리광 부리며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데 한국에서 급한 연락이 왔어.


아버지셨어. 회사에서 준비 중인 개발 프로젝트, 이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지원사업의 1차 서류 과정을 통과했고, 2차 발표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선 내가 내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아빠, 나 지금 백신 맞고 너무 아프고 피곤해서 못 할 거 같아요’


‘컴퓨터 킬 힘은 있지? 죽지 않을 거 같으면 해야만 해. 올 하반기에 필요한 매우 중요한 사업이야. 회사의 사활이 걸렸어, 할 수 있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나는, 결국 새벽에 침대에서 몸뚱이를 끄집어내 일으켰고, 3일 동안 너 몰래 울면서, 문자 그대로 내 사활을 걸었어.


‘하기 싫어도 해라.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는 남는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되뇐 말이야.


그리고 며칠 전, 부모님으로부터 그 사업을 최종 합격했단 연락을 받았어. 3억짜리, 4차 산업 지원사업이었어. ‘아프지만 역시 네가 자료조사와 프레젠테이션 PPT를 잘 만들어 준 덕에 붙었다’고.

너무 좋아하시더라. 근데 이 결과를 얻는 동안 사라진 감정이 남녀 간의 사랑일 줄은 난 몰랐지.


여성 대표의 삶이 이렇게 회사를 위해 변할 줄은 창업할 땐 몰랐어. 다른 여성 대표님들처럼 바쁘더라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지 뭐야. 넌 프랑스인이고 난 한국인이란 것. 너에게는 떠나기 어려운 늙어가시는 프랑스 부모님, 한국에서 키우길 포기한 널 누구보다 사랑으로 키워주신 양부모님이 계시고 나에게는 다시 마지막으로 모든 걸 건 부모님과 함께 하는 가족사업이 있어. 너와 나의 간격은 프랑스와 한국만큼이나 더 멀어지게 될 거 같아.

매일 새벽, 나의 양어깨를 찍어 누르는 이 중압감을 극복하려고 아무리 3대 중량을 늘려보고, 어떻게든 매달리려 풀업을 연습하고, 매일 운동에 미친 여자처럼 악에 바쳐 렉에서 도전해도 200kg은 여전히 너무 무겁더라. 나름 3대 180kg을 치는데도 말이야. 이 운동도 PVC 패키지 상자 혼자 들다 허리 다친 후로 안정적으로 더 잘 들려고 시작했다는 거 알아?


가정과 사업, 동시에 다 어깨에 올릴 만큼 난 아직 충분히 강하지 못한 거 같아. 결국 난 너와 함께 할 인생의 무게를 비겁하게 먼저 빼내게 된 거야. 그 새벽에, 내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넌 모르겠지만.


AS수리서 : 이 사람, 세상모르고 잘 때, 코를 좀 고는데, 그건 제가 살 빼서 고쳐 놓을게요. 이미 4킬로 뺐어요. (수리기사: 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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