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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Apr 23. 2022

오십 딸, 여든둘 엄마와의 제주 여행

왜 이제일까.


제주 여행 열 손가락으로 꼽기에 그 개수가 모자란 것이 벌써 오래전인데, 엄마랑 단둘이 제주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라도'라는 마음으로 위로해보지만, 여행 내내 죄송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세 가족과 함께 동행하신 적은 있지만, 아이와 남편 없이 엄마에게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여행은 달랐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엄마가 곁에 존재하시는 의미가 달라졌다. 아니, 불안해졌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만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었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부터 줄곧 엄마를 졸랐다. 둘이 여행 가자고.

처음 엄마를 설득해서 날짜를 받아낸 다음 날, 좀 더 미루자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이해가 안되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떼쓰며 울었다.

여행 와서 엄마가 그 얘기를 꺼내시며, 어릴 때도 생전 떼 안 쓰던 아이가 오십이 다 되어서 떼쓰며 우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고.


불안함이 조급함으로 바뀌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렇게 엄마를 보내게 될까 봐 조급함에 어쩔 줄 몰랐다.

렇게 떼를 쓰고 1년이 지난 2022년 4월 봄, 엄마와 4박 5일의 제주 여행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여행 내내 엄마는 웃으며 내게 그랬다. "이제 다 이룬 거야?"




꿈꿔오던 여행이지만,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여든둘이신 엄마를 모시고 여행하려니,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엄마의 취향을 생각해내고, 그것에 맞춰 일정을 고민했고, 엄마의 약한 소화력을 고려해 그때그때 드시고 싶은 먹거리를 고민해야 했다.

여행을 코 앞에 둔 시점에는 엄마와 싸우지만 말자 하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엄마의 취향을 읽는데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았고, 예상치 못했던 건 여행 후 엄마가 꼽으신 원픽이 제주 현대미술관이라는 것이다.


비가 오면 갈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 둔 곳이 제주 현대미술관 내 문화예술 공공수장고였고, 그곳에서 미디어아트 전시가 있었다. 미술관 가보신 경험이 없는 엄마에게 어떨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을 좋아하시는 것에 초점을 두고 꼽아두었다.

어두운 공간에서 5분 여를 기다렸다가 정시가 되어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엄마는 입모양으로 연거푸 탄성을 뱉어내셨다. 그리곤, 가까이 와서는 천국에 있는 것 같이 황홀하고 하셨다.



여행 내내 엄마는 반전을 보여주셨다.

금능해변에서는 해변 경치보다 파도에 밀려온 미역과 파래에,

용머리해안에서는 해안절벽의 거대한 매력보다 바위에 붙은 거북손과 고동들,

수국 축제에서는 탐스럽게 핀 수국보다 사이사이 열매 맺은 하귤 나무,

새별오름을 오르면서는 오름의 웅장함보다 키 작은 할미꽃에,

송악산 둘레길을 완주하면서는 바다를 벗한 둘레길 풍경보다 꽃을 피운 솔나무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는 펼쳐지는 제주스러움보다 가족 얘기와 친구분들 얘기에 

더욱 집중하시고 즐거워하셨다.


머릿속에 준비했던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에 감탄에 감탄을 이어가시는 엄마를 보며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엄마의 추억이고 역사가 표현되는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엄마의 그런 모습이 (죄송하지만) 귀엽기까지 했다.




여행 하루 전부터 엄마와 같은 공간에서 6일.

"너 십 대부터 지금까지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거 아니? 십 대 때는 주말마다 교회 가거나 친구 만나러 가고, 독립하더니 바로 서울로 가고, 그리고 결혼하고."

그러면서 엄마는 40년을 밀린 이야기를 다 풀어내듯 쏟아내시며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하셨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는, 엄마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미술관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으셨던 것 같다.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시다가 노래를 부르시기도 하고, 쿵짜자작작 장단을 맞춰드리면 어깨도 들썩이시던 그 시간이 어쩌면 엄마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셨 것이다.


5박 6일의 시간동안 엄마가 가장 많이 하셨던 말.

"내 막내~ 이렇게 여행 와줘서 너무 고마워".

그런데 나는 그런 엄마에게 이 말을 한 번도 못했다는 걸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엄마, 건강하게 나랑 여행 다녀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내일 아침 꼭 이 말을 전해야겠다.


(첫 사진: 가파른 새별오름 오르시고, 지쳐서 바닥에 앉아버린 엄마의 모습이 귀여워서 남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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