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차림: 한경면 기온 16-19도. 반팔 티셔츠에 얇은 바람막이 재킷을 입고 오전 10시 반부터 걷기 시작. 오후 3시가 넘어가면서 재킷을 하나 더 입음.
이번 올레 여행은 저지마을을 중심으로 뻗어있는 13, 14, 14-1코스를 걷기로 했다. 아침 비행기로 제주 공항에 도착해서 14-1코스의 종점인 오설록으로 가기 위해 151번 버스를 탔다. 50분가량 이동해서 오설록에서부터 역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설록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올레길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주차 관리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찾을 수 있었다. 비가 꽤 내리는 데다 오설록 입구 부분 공사로 인해 작은 이정표가 가려져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오설록 뮤지엄 반대방향으로 이동해서 길을 따라 몇 걸음 가면 녹차밭이 나온다. 그 녹차밭을 가로지르는 방향에서 살짝 왼쪽을 바라보면 멀리 파란 간새가 보인다. 거기서 시작 스탬프 찍고 출발.
왼쪽 사진 가운데쯤 조그많게 간새가 보임. 14-1코스 종점 스탬프 지점.
시작 지점에 2시 이후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어두워지면 곶자왈에서 길을 잃기 쉽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아무래도 곶자왈은 숲이 우거져 빛이 덜 들어 조금 어둡기도 하겠지만, 덩달아 비도 덜 들어 약간의 비는 우산 없이 걸을만하다. 길을 잃을 염려 때문인지 14-1코스는 어떤 올레보다 리본이 촘촘히 달려있었다. 발견한 리본 뒤에 다음 리본이 보일 정도로.
우중 곶자왈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모습에 촉촉함까지 더해진 숲길은 향기롭고, 고요했다. 나무뿌리와 현무암 바닥으로 걷기가 편하진 않았지만, 바닥이 현무암인 덕분에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는 장점이 있어 좋았다. (곶자왈 산책 일정을 잡으셨거든 늦은 시간을 이유로는 취소하더라도, 비 오는 날씨를 이유로는 취소하지 마시길.)
오전 두어 시간은 빗길에 걸었는데, 다행히 걷는 중에 비가 그쳤다.
14-1코스는 현무암 돌멩이들과 비슷해 자칫 헛갈리기도 하는 말의 배설물이 자주 보인다. 코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다행히 여름이 아니라 이것으로 인해 올레길이 불결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여름을 피해서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곶자왈 숲길을 벗어나면 바로 벤치가 하나 있고, 얼마 안 가서 정자가 하나 있다. 둘 중 어디서든 꼭 쉬어가시길 추천한다. 마지막 간새를 만날 때까지 앉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문도지 오름을 오르는데, 스탬프 찍는 곳 바로 옆 문을 닫고 다니라는 경고문이 오름을 오르는 문처럼 위치해있다. 문도지 오름은 쉽게 오를 수 있는데, 그 수고에 비해 너무 귀한 장관을 보여준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름 군락. 구름이 낀 모습조차 특별해 보였다.
오름에서 내려오면 빨간 머리 앤이 탄 마차가 지났을 법한 길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 그러다 마을 입구 폭낭이 보이고 다시 귤밭들이 이어지는 길을 지나면 드디어 멀리 저지오름이 보인다. 이제 완주가 코앞. 마을을 지나며 소리소문이라는 책방을 만나는데, 강력하게 발길을 당기지만 역시나 배낭 무게를 더할 수 없으므로 책방은 눈물을 머금고 스쳐 지나갔다.
도중에 식당이 없는 코스라 에너지바를 먹으면서 종착지인 저지마을까지 가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랬던 탓에 밥 생각이 간절했는지 9km 남짓한 거리를 제대로 쉬지 못하고 걸었다. 저지오름이 눈에 보인 후엔 급격히 다리가 무거워지더니 가도 가도 나타날 것 같지 않던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메뉴를 따질 것도 없이 들어간 고마운 식당, "올레집". 멸치 국수가 이리 맛날 일인가. 거듭 밝히지만, 올레꾼의 맛 평가는 어느 정도 감안해서 참고하시길.
2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몇 걸음 더 걸어 저지마을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14-1코스의 마지막 간새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