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5일
상반기 마지막 올레 여행. 오기 전에는 폭우를 걱정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서 보니 폭염이 걱정이었다.
토요일 이른 시각 비행기를 탔지만 제주공항을 벗어나 '다호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걸으면서부터 이미 땅은 뜨겁게 데워져 있었다. 455번 버스를 타고 16코스 종점에 내렸다. 조금이라도 더 더워지기 전에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공항에서 가까운 종점부터 역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광령 1리 마을회관에서부터 출발.
시작 지점부터 강력한 손짓을 보내는 감성 카페를 만났지만, 지체할 수 없었기에 광령초등학교를 따라 얼른 걸음을 떼었다. 정오를 향해 갈수록 뜨거운 햇볕에 차라리 비가 쏟아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내내 하며 걸었다. 그럼에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그림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코스였다.
더위에 지쳤음에도 신나게 걸었던 기억이 있는 구간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항파두리 유적지 시작 구간이었다. 여몽연합군에 의해 이곳 항파두성의 삼별초군 전원이 순의한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삼별초 군사들 뿐 아니라, 제주도민들까지 겪은 고초를 떠올렸다면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다행인 것은 유적지에 들어서서 만난 작은 집의 글귀 덕분에 뒤늦게 잠잠히 걸었다.
수산봉을 지나 애월읍의 내륙을 관통하면 구엄리 돌염전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바당올레가 이어진다. 더운 날씨에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바당올레가 더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내륙을 걷는 것이 더운 날씨에 제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내 포구에 도착해서 스탬프를 찍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어 "잇수다"를 찾았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털썩 앉았다. 머리카락 한올도 빠짐없이 젖었음에도 모자를 벗었다. 다행히 손님이 없는 시간이었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또한 올레를 걸으면서 얻게 된 좋은 점의 하나다. 타인의 시선을 점점 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점. 집 앞 슈퍼에 나갈 때도 대충 나서지 못하던 나로서는 굉장히 큰 변화다.
(아, 잇수다의 돈가스 맛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