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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Jan 13. 2023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세계의 여성 17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삶을 이야기하다


어릴 때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반공 포스터를 그렸던 기억이 있는 세대다. 그런 교육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두려움을 상쇄시켜 주는 나름의 피난처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골목길 울퉁불퉁한 회색 담벼락에 있는 자그만 나무 문짝이었다. 열어보면 (딱 나만큼) 덩치가 작은 아이 한 명 겨우 들어갈만한 공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인 주택의 작은 외부 창고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사용할 수도 없었겠지만 그때는 전쟁이 나면 꼭 여기로 뛰어와서 숨어야지 생각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전쟁이 일어나면 최고 격전지로 가서 전쟁 첫날 생을 마감하는 쪽을 택해야겠다는 나약한 생각을 해왔다. 전쟁 속의 상황을 견디느니 그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차피 다들 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목숨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나를, 책 한 권이 바꿔놓았다. (이런 극적인 문장은 선호하지 않지만, 정말 그랬다.)

전쟁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엄청난 변화다. 

평온한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된 우크라이나 사람, 그를 받아들인 폴란드 사람, 그리고 난민과 함께 살아갈 마음이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듯한 마을로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에 점점 마음을 흔들었다. 이제껏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슈가 떠오를 때면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데,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이는 폴란드의 모습은 현실적인 여건을 초월한 수용이었다. 각자의 놓인 상황에서 이미 일어나 버린 전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여성 17명의 인터뷰. 이들의 이야기 사이에 단 몇 줄 등장한 이가 가슴에 들어왔다. 병원 침대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위한 인형을 차에 싣고, 기차역에서 피난처로 이동하는 가족을 라이딩하는 암환자 이야기였다. 그녀가 암환자라는 극한의 상황 때문은 아니었다. 악기와 총을 같이 멘 바이올리니스트와 같은 엄청난 이야기가 아닌 인형과 운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일상이 연결된 단어였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어쩌면 전쟁 중에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주었고 여운이 길었다.


전쟁 중에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반대편에 선 이들의 인터뷰였지만, 푸틴의 프로파간다를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이의 인터뷰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 읽는 동안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듯 그 인터뷰 또한 이 책에 필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중립"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지켜주면 좋은 것, 또는 한 사람 안에도 치우친 부분과 중립을 지키는 것이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그 생각마저도 다시 숙고하게 하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만의 입장이 있어야 하지만, 내 입장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느낌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말은 해본 적이 없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불가능한 중립을 이루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은 내가 평화의 편이라는 말과 배치될 수 있다. 평화라는 말과 중립이라는 말은 같은 뜻을 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저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이야기이고, 우리가 처한 현재와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에 대한 설명보다 전쟁에 이어져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서 더욱 가깝게 다가온 것 같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이 준 생각으로 또 다르게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또 세상에 감사한 사람이 두 명 늘었다. 윤영호, 윤지영 작가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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