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모의고사가 있던 날 아침이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등교 준비를 했다. 어젯밤 잠깐 자고 일어나야지 했던 것이 아침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시험공부 진도는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은 천근만근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늘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만큼은 열심을 내던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해보고 싶었지만, 긴 시간 준비한 예습은 수업 시간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교과서 왼쪽 페이지로 넘어가 내 팔꿈치 아래에 눌려져 있었다.
계획했던 만큼 공부를 해내지 못하는 시험 주간의 패턴은 매번 비슷했지만, 그날은 더욱 절망감에 무거웠다. 배가 아프진 않았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났다. 세상모르고 깊이 자버린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엄마를 불렀다. 오늘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그 시절 어르신들에게 개근상은 성실의 척도였다. 엄마는 우리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개근상을 꼭 받아야 함을 강조하셨기에, 방학식 날이면 오 남매 모두의 손에 개근상이나 정근상은 꼭 들려 있었다. 다정하시지만 단호한 분이었기에, 결석은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엄마는 바로 돌아서서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으신 후에 많은 말은 하시지 않았고, 시험 보지 않은 과목은 모두 0점 처리될 수 있다는데 괜찮겠냐고 물으신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화를 내시긴커녕 오히려 종일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성인이 된 지금도 이 날 자주 떠오른다. 일부러 꺼내어 기억하기도 한다.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던 시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신 엄마의 마음을 자주 떠올린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 하루가 나 자신을 믿는데 끼친 영향을 선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했던 엄마의 즉각적인 반응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내게 전해진 것은 거대한 신뢰감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반응해 주신 건 평소 나를 향한 믿음이 있으셨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내가 누군가를 신뢰할 줄 알게 되고, 다시 누군가도 나를 신뢰하게 되는 여정에는 아마도 이 일이 큰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난 재작년 봄, 엄마와 단둘이 4박 5일 긴 시간을 가졌다. 여든을 넘어서면서 어리광이 는 엄마는 “너 성인 되고 엄마랑 이렇게 오래 같이 있는 거 처음인 거 아냐?” 말씀하시며 그간의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그전부터 남편과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소식을 들으시기라도 하는 날은 토라진 말투로 “재미있더냐?” 하시기도 했다.
엄마는 일흔이 되시더니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새 여든 자리에 와계셨다. 내 삶에 집중하느라 엄마에게 여유를 내지 못하는 동안 세월은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 있었다. 함께 여행하지 못했던 죄송한 마음과 더불어, 솔직히는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단둘만의 여행을 추진했다.
여행하는 5일 내내 엄마는 들뜬 아이처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운전을 하면서 엄마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길을 잘못 들었을 때도 “아이고, 내가 말이 너무 많아 그렇지?” 하시다가도 그 잠시를 벗어나면 또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주에서의 엄마는 책임감을 가지고 돌봐야 할 어린아이 같은 면을 보이셨다.
여행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궂은 날씨 덕에 제주현대미술관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엄마는 난생처음 미술관이란 곳엘 가셨고, 때마침 전시 중인 미디어 아트를 보신 후 마음이 촉촉해지셨다. 다시 차에 올랐지만, 그전까지와 조금은 다른 무드였다. 천국에 갔다 온 기분이라고, 최고로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여행 중에 처음으로 조용한 차 안이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시 차에 머물렀고, 나는 언젠가 꼭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거대한 신뢰를 보여주셨던 30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엄마는 그런 적이 있었냐며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때 엄마가 혼내실 줄 알았는데, 나를 제대로 믿어주시는 게 느껴졌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엄마는 "에이, 뭘 그걸로 그러냐" 하시며 손은 흔들었지만 얼굴은 웃고 계셨다.
즐겨 듣던 팟캐스트에서 게스트로 나온 초등학교 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단 한 명의 어른’(one caring adult)이라는 말이 있다고. 아이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단 한 명의 어른만 있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그런 단 한 명의 어른이 계셨기에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신뢰는, 내가 나를 믿게 하고, 나도 내 아이를 믿게 하는데 까지 '내리 신뢰'로 이어졌다.
엄마는 아직도 우리 오 남매에게 부유하게 키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좀 더 잘 먹이고 좀 더 공부 뒷바라지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시면서. 그럴 때마다 "충분해요, 엄마. 그날 보여주신 그 마음 만으로 막둥이 마음은 아직도 차고 넘친다고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쑥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짧게 말씀드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