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역사적인 날'은 없었으면 좋을것을...
어릴 때 오빠들은 골목에서 친구들과 편이 나뉘는 놀이를 많이 했다. 그런 놀이를 하는 날은 "야, 나쁜 놈 저기 있다!"라는 류의 말이 자주 들려왔다. 우리 편은 착한 놈, 상대 편은 나쁜 놈. 무조건이었다. 그 누구도 거기에 토를 다는 놈이 없었고,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불렀다.
오늘 낮 1시, 설마설마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 분노를 나도 누군가에게 "나쁜 놈아!"라고 해대기라도 하며 쏟아내고 싶은데 그 나쁜 놈이 정작 누구인지 헷갈린다. 우리 편인지, 상대 편인지.
"어떵 살아야 할거꽈." 뉴스 제목에 가슴이 찌릿했다. 이 한마디가 수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한 마디가 아닐까. 이분들에게는 평생 믿고 배를 띄웠던 바다가 사라지는 것이 목전의 총칼보다 더 두렵지 않을까.
그분들의 무너지는 마음을 감히 추측할 수 없겠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망했을 당시로 생각이 이어졌다. 그 일로 우리 가정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버지가 하시던 가게에 빼곡했던 전자제품들이 기억난다. 가게 중앙에 빨간색 왕관 모양 "금성"이라는 마크를 달고 있던 전축도 생각난다.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셨지만, 그 가게 매출 덕분에 우리 집엔 콜라와 사이다가 박스로 끊이지 않고 배달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오 남매에게 보여준 아버지의 자부심이 아니셨을까 싶다.
그러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 가게를 접어야 했고 이층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좁은 빌라로 이사해야 했다. 그 뒤로 아버지는 더욱 거칠어지셨고 우리 가족은 웃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 사업 실패의 여파는 우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회복되지 못했다.
한 가정의 생계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이거 아니면 다른 거 하면 되지' 이런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우리 편에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바다가 망가지는 것은 단순히 "그래도 바닷물을 떠먹을 수 있다"라는 말로 위장하는 정치의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가정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고, 인류의 일이고, 바다의 일이고, 지구에 속한 모든 생명의 일이다.
"어떵 살아야 할거꽈."
제주에서 물질로 생계를 이어오신 해녀님의 한마디가 귓가에 여전하다.
잘 버텨주시길... 이렇게 바라는 마음조차도 송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