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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Aug 17. 2023

이제야 책이 재미납니다

예기치. 못한. 기쁨.
더도 덜도 말도 딱 이 세 단어가 제대로 된 표현이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제대로 집중해서 '책'이란 걸 보기 시작한 것이.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도서관 어린이 코너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폭신폭신한 연두색 계단에 앉아 그림책을 읽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아이를 위한 시간이 점점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 덕분에 아이들 연령이 비슷한 엄마들과 그림책 모임을 하게 되기도 했다. 떠올릴 때마다 5년 간 함께 해준 멤버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그렇게 책과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아이의 연령에 한 발짝씩 앞서 아동책, 청소년책을 읽다 보니 지금에 와있다. 그림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즐거움이 컸던 것 같다. 그러다 그림이 점점 줄고 활자가 많은 책으로 갈수록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책은 좋은 것,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했지만,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책 읽는 아이 옆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순 없었으니까. 게다가 책을 통해서라도 좀 더 괜찮은 어른이고픈 욕망이 있다 보니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책을 읽어오다가 더웠던 7월 어느 날, '아, 책이 너무 재밌어!'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그날의 몇몇 요소가 맞아떨어진 것이었을까. 최근 남편이 구입해 준 이북리더기가 손에 들려 있었고, 시리즈로 읽어오던 소설이 세 번째 편에 들어서 있었고, 방학 중인 아이가 곁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리고 있었고, 또...

이거다 싶을 만한 특별한 그날만의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그 설렘만큼은 특별했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은 내적 레벨업이랄까. 아이들이 게임에서 더디고 지난한 퀘스트를 완료해 내면 이런 기분일까.(웃음)


10년. 뭐든 10년간 한 우물을 파면 결실이 있다더니 그림책을 집어든 그 시기가 10년 조금 넘은 것 같다.

책 읽는 시간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마냥 기다려진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간 재미있게 읽은 책들도 있지만 이렇게 그 시간을 기다려보기는 처음이다. 어떤 식으로든 꾸준히 하다 보니 즐기게 되는 시점이 오는구나. 이런 순간을 맞이하게 되다니, 예기치 않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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