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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Jul 18. 2024

결혼 서약만 스무 번째

"오늘 결혼 예식에 신랑 된 나 ㅇㅇㅇ은......"

"오늘 결혼 예식에 신부 된 나 ㅇㅇㅇ는......"


19년 전 7월.

장맛비도 하루 쉬어가던 어느 토요일 우리는 여러 증인들 앞에 서서 부부가 되기 위한 서약을 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서약서였다. 혼을 준비하며 우리는 자신이 읽을 서약서를 직접 쓰기로 했고 각자 따로 쓰되 함께 읽을 마지막 문단만 함께 준비했다.  문단 외에는 그날의 신랑도 신부도 처음 듣는 서로의 서약이었다.

그리고 2024년 7월 무더운 저녁.

우리는 스무 번째 결혼 서약서를 낭독다. 19년 전과 동일하게 신랑 서약에 이어 신부 서약 그리고 함께 읽는 증인들 앞에서의 고백. 매해 같은 날 같은 순서로 같은 내용낭독하만, 달라진 것은 이 날의 포토그래퍼인 동시에 증인이 되어주는 딸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결혼 1주년이 되면서 의미 있는 세레모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진심으로 준비했던 만큼 의미 있었던 서약서를 떠올렸다. 그날을 시작으로 매해 결혼기념일에 같은 서약서를 읽었지만 기억하기로는 같은 감정이었던 날은 없었다. 괜스레 다시 꺼내어 읽기 머쓱했던 날도, 싸운 뒤 앙금이 남아 읽기 싫었던 날도, 사느라 바빠 미안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울컥했고, 다시 한번 나와 결혼했던 그때 그 사람과 그때의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단 몇 분이면 끝나는 세레모니였지만, 그 시간이 두고 가는 공기는 가볍지만은 않았다.    

감정이 좋지 않았던 날은 평화 협정의 악수로 이끌어주기도 했고, 미안했던 일이 많았던 날은 눈물을 닦아주며 마무리되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 되든 서약서 내용에 비추어 이제는 신랑 신부가 아닌 남편 아내로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잠깐이나마 떠올는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부부싸움의 총량이 있을 거라고 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2년 전부터 꽤나 제대로 부딪히고 있는 중이다. 미뤄진 만큼 치열하게. 남편 말에 의하면 함께 산 시간이 우리가 살아온 50여 년의 반도 안 되는 시간이라 아직 부딪히는 게 당연한 것 같다고. 그 말이 정답이다 싶었다.

다행인 건, 젊고 뜨거울 때가 아닌 덕분에 긴장 상태를 끌고 나가기보다 한시라도 빨리 편안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된다는 것. 그리고 부딪혀가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기보다 나를 더 돌아보게 되고, 나를 알게 된 만큼 상대에게 미안해진다는 것이다. 남편 말마따나 우리 고작 19년 같이 살았으니, 앞으로도 우리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하며 잘 살아보는 걸로. 20년 후에는 둘이 손잡고 산티아고를 벌써 세 번째 걷고 있을 거라는 남편의 미래 기억을 나도 함께 기억해보기도 했다. ('미래 기억'은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함께 읽은 이후 우리가 자주 꺼내는 말이다.)


올해로 스무 번째 서약서를 낭독하면서 우리는 몇 번째까지 건강한 목소리로 서로 마주 보며 앉아 낭독할 수 있을까 했다. 우스갯소리로 호호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낭독하는 모습도 재미있겠다고 얘기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작지만 큰 바람이 아닐까 싶다.








<신부 서약>

33년이라는 시간을 마라톤을 하며 온 듯합니다.

홀로 달리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한순간도 변함없이 함께 달리시며 인내하는 법과 섬기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중반쯤 달려온 저에게 하나님은 귀한 동반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마라톤을 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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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째 서약하는 모습/ 20번째 서약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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