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떠올릴 때 개인적으로 첫 번째로 꼽는 것이 신뢰다. 특별히 가족 안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틀이라 여긴다. 이 기틀에 금이 간다면 그 위로 무엇을 쌓을 수 있을까.
신뢰를 주는 것과 받는 것.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마음에서 신뢰를 도려내어 꺼내어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차라리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 내가 가진 필터에 생각이 닿았다.
누구에게나 살아온 시간만큼 두껍게 색이 입혀진 필터가 있다.
나의 뇌 속에 있지만 내 의지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 더 많다. 무의식 속에서 자체적으로 작동하도록 기본 설정이 되어있다. 상대방이 A를 말하고 있음에도 필터가 작동하면 a로 받아들이거나 B나 C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심지어 어느새 내 시선이 오른쪽 허공 어딘가를 주시하며 Q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A를 a로도, A를 B로도 자체 해석하지 않고 A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상대방이 소리 낸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위해 상대방과 눈맞춤 하며 필터를 움직여본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할 말을 떠올리기보다 온전히 귀를 기울이며 필터를 off 시켜본다. 그것이 필터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 의지를 발휘하는 동안 나의 신뢰가 전해지고, 이어서 상대방에게서 오는 신뢰를 내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렵지만 포기하기보다 필터 제어 능력을 조금씩 키워보는 쪽으로 선택하려 한다. 절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관계이기에.
(이미지 출처: Pixab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