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 84에게 배우기
기안 84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드라마 속의 이런 장면을 아무런 감정 없이 지나쳤다. 그럴 수 있겠구나 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들을 이유가 없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 사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어쩌면 만족하며 살아왔을 이에게 불쌍한 눈을 하며 내뱉는 그 말은 어떤 선함도 담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전 내가 들었던 그 말이 생각났다.
신혼 무렵 강남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집을 구하며 남편의 직장과의 거리가 1순위 기준이었다. 우리가 가진 돈에 비해 깔끔하고 오래되지 않은 집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다. 비록 스무 평도 안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였지만 우리에겐 더없이 만족스러운 시작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누군가 그 말을 했다.
그 당시 아파트 이름만 말해도 사람들의 눈이 커지던 곳에 살던 분이 어쩌다 우리 집에 와보게 되었고, 드라마 속 재벌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우리 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토시 하나도 틀리지 않게 그 말을 내뱉었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답답하겠네."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그때는 특별히 대답하지 못하고 배웅했을 것이다. 말을 했다면 "아, 좀 좁죠?" 정도였겠지. 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기억에 남아있다. 만족하며 지내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그분의 태도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쁜 의도로 한 말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스스로 알 것이다. 그 안에 좋은 의도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그들의 생활이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단지 내뱉는 말을 조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꾼다면 그런 말이 새어 나올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고맙습니다, 기안 84. 덕분에 세상을 함께 사는 법을 또 하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