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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Sep 19. 2024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기안 84에게 배우기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라는 프로그램을 뒤늦게 보게 되었고, 기안 84라는 사람의 무해함이 좋아 시리즈를 완파했다. 현지의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그가 존경스럽기도 했다. 잠자리가 까다로운 나로서는 현지인의 잠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저런 데서 어떻게 자"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재벌이 나오는 드라마 속에는 반드시 서민 중에 서민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재벌 2세(또는 3세)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 국룰이다. 그리곤 평범하게 사는 주인공 집에 가서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이런 데서 산다고?"라는 말을 내뱉는다.

기안 84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드라마 속의 이런 장면을 아무런 감정 없이 지나쳤다. 그럴 수 있겠구나 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들을 이유가 없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 사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어쩌면 만족하며 살아왔을 이에게 불쌍한 눈을 하며 내뱉는 그 말은 어떤 선함도 담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전 내가 들었던 그 말이 생각났다.


신혼 무렵 강남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집을 구하며 남편의 직장과의 거리가 1순위 기준이었다. 우리가 가진 돈에 비해 깔끔하고 오래되지 않은 집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다. 비록 스무 평도 안되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였지만 우리에겐 더없이 만족스러운 시작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누군가 그 말을 했다.

그 당시 아파트 이름만 말해도 사람들의 눈이 커지던 곳에 살던 분이 어쩌다 우리 집에 와보게 되었고, 드라마 속 재벌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우리 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토시 하나도 틀리지 않게 그 말을 내뱉었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답답하겠네."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그때는 특별히 대답하지 못하고 배웅했을 것이다. 말을 했다면 "아, 좀 좁죠?" 정도였겠지. 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기억에 남아있다. 만족하며 지내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그분의 태도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쁜 의도로 한 말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스스로 알 것이다. 그 안에 좋은 의도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그들의 생활이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단지 내뱉는 말을 조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꾼다면 그런 말이 새어 나올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고맙습니다, 기안 84. 덕분에 세상을 함께 사는 법을 또 하나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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