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일> (최소영, 무제)를 듣다가
외출할 때면 문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오디오북을 귀에 꽂는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텍스트는 멀미를 일으키기도 하고 자리에 앉지 못하면 손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면 저도 모르는 사이 책장이 넘어가버리는 것이 오디오북의 단점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흥미가 떨어지는 주제라거나 지루한 소설인 경우에는 놓치는 부분이 많아진다. 그래서 귀에 쏙쏙 들어올 취향에 맞는 오디오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에 만난 <살리는 일>(박소영, 무제)은 우연히 만났지만 제대로 찾은 책이었다. 배우 박정민의 출판사 무제에서 출간한 첫 책이라 그런지 박정민 배우가 직접 낭독한다는 정보에, 단순한 팬심으로 듣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 책이나 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도 했다. 역시 배우의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하지만 들을수록 그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책의 한 줄 한 줄이 귀가 아닌 가슴에 들어왔다.
캣맘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동물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들어서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그동안 너무 인간 위주로 살아와서 미안하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그저 무서운 존재였다. 귀여운 강아지도 고양이도 모두 '나를 물거나 할퀴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 속의 박소영 작가와 그 동생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살리는 일이 그들의 삶이었다. 눈물이고 사랑이었다. 책을 들으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책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그 답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이라고.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살만하게 만드는 사명을 다하는 것이었다.
몰두해서 책을 듣다가, 멈추어 내 가방 속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났다.
작가의 가방 속에는 고양이를 먹일 사료와 작은 그릇과 주변에 유해한 것들을 정리할 비닐봉지가 항상 들어있다는 이야기였다. 듣기를 멈추고 내 가방 속을 생각했다. 온통 나를 위한 것들 뿐인데, 작가의 가방 속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외출을 준비하며 잊고 나와서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고작 핸드폰, 책, 이어폰, 손수건 정도일 뿐인데... 작가의 마음을 불안하게까지 만드는 것은 고양이를 먹일 것들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무엇을 가방에 넣어야 할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나는 다른 존재를 위해 가방의 무게를 늘린 적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겨우 생각난 것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초기에 미처 마스크를 챙겨 나오지 못해 당황해하는 사람에게 건넬 여분의 마스크 하나. 그리고 억지로, 손수건 텀블러 장바구니... 지구라는 존재(?)를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생각났다. 만족스럽지 않은 다행이었다.
이런 생각이 죄책감을 파고들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다만 앞으로 내 가방 속에 무엇을 추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던져주는 것에서 그칠 수 있어서. 조만간 내 가방 속에는 지구에서 공존하는 어떤 존재를 위한 무엇이 하나 추가될 것이다. 아직 무엇을 담게 될지 모르지만, 이 고민이 즐거운 것은 왜일까. 살짝 더 무거워진 내 가방의 무게감이 나에게 주게 될 감정 또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