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단상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by 툇마루

지난 한 주는 헌재의 선고보다 산불의 진화 소식이 더 절실했다. 매일 아침 눈이 제대로 떠지기도 전에 진화에 어느 정도 진전은 있었는지, 오늘 그 지방의 바람의 속도는 어떤지, 비 예보는 없는지에 대한 검색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절실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매일 몸체를 불리는 불덩어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갔다. 그렇게 열흘에 가까운 날들을 넘겨 많은 사람의 희생과 목숨을 삼킨 다음에야 주불은 어느 정도 진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이었음에도 다행스러웠지만 기쁘지 않았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 재만 남은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곳에 수만 수천 그루의 나무가 생명을 잃었고, 수많은 동물들이, 누군가의 생명이, 꿈이, 일상이 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할 말이 없었다. 경북 어느 곳에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여는 지인이 있다. 그가 긴 시간 꿈꾸고 모든 것을 집중해서 만든 새로운 공간이 화마에 쓸려가면 어쩌다 가슴을 졸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곳까지 불이 닿지 않았지만, 그곳을 염려하게 된 이후로 화재가 발생한 지역의 일이 더욱 남일 같지 않았다.


머지않아 있을 (있어야 할) 헌재 선고 이후에 대해서 생각이 닿았다. 기다리던 "그날"이 오고, 마땅한 선고를 듣고, 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마땅한 벌을 받게 될 때도 다행스럽지만 기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켜켜이 만들어져 온 이 나라가 어이없이 재로 변해버린 이미지를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긴긴밤 잠을 이루지 못했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정의를 잃었고, 일상을 잃었다. 12월 3일 이후로 영화 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폭력이 온 나라의 일상을 덮었다. "그날"이 온다 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각자 그저 '긁힌 정도'가 아닌 때마다 깊이 욱신거릴 상처를 또 하나 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욱신거릴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 것인지.


곁에 앉아 과제를 하던 아이가 마무리된 리포트를 보여준다. 인공 지능이 일으킬 오류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에 아이의 결론이 내 생각과도 이어진다. 누구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도구를(인공지능을) 사용해야 한다는 아이 리포트의 결론.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구부터 누군가의 삶을 재단하는 법이라는 도구에 이르기까지 책임감은 당연히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무책임한 의식으로 혼자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데 주력을 쏟지 않고 말이다.


욱신거리는 4월이 시작되어 버렸다. 2025년의 4월은 11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연고라도 발라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랗고 푸른 꽃으로 봄을 다시 입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