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가 나에게 미친 영향 세 가지
가슴 깊이 메시지를 남기다 못해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 드라마가 있긴 하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남편에게까지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폭싹 속았수다>(이후 폭싹)가 처음이다.
사실 남편은 양관식 같은 면이 없지 않았지만, 함께 드라마를 시청한 이후로 좀 더 내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이전에는 딸아이와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거나 침묵으로 중립을 지켜오더니, 양관식이 오애순을 편들듯 내 입장에서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는 일이 생겼다. "ㅇㅇ아, 엄마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 그날은 어찌나 든든하던지.
또 다른 영향은, 오애순을 보면서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키며 성숙한 어른이 된 모습을 보면서였다. 사랑하는 조카가 생각났다. 한 사람의 지극한 마음만으로 가능하다면, 그래서 오애순과 같은 심지를 가질 수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내가 그 아이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존재하고 싶어졌다. "넌 잘해, 다 잘해."라고 말해주면서.
그리고 또 하나의 영향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기차에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다. 전적으로 폭싹의 영향 때문인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뤄왔는데, 망설임 없이 기차표를 끊게 된 것이 폭싹의 영향이다. 여전히 가기 힘든 이유들은 존재하지만, 그 이유들을 뒤로 물리고 엄마와의 시간을 마음 앞으로 훅 당겨오게 만들어준 것이다.
애순이에게 엄마를 만질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만질 수 없는 엄마와의 시간에는 다함이 없었다. 아마도 엄마가 애순이에게 보여준 사랑이 강력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올해로 결혼을 하고 20년째이다. 그동안 엄마와 부산, 서울에 멀리 살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만질 수 있는 엄마와 강력한 사랑의 기억을 좀 더 만들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엄마를 만질 수 없는 시간을 버티기에는 아직도 턱 없이 준비되지 않은 딸이다.
폭싹을 본 이후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 장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동감하는 부분이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인물과 이야기가 들어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이야기가 세상에 존재하도록 만들고 싶게 한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서로를 은평구 양관식, 은평구 오애순이라 부르고 있는 게 아닐까. 관식이를 위해 학씨에게 발차기를 날린 애순이만 따라할 게 아니라, 광례 똘 애순이를 지킨 이모들의 마음에까지 욕심을 내어 사랑하는 조카의 지극한 이모 자리를 잘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