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거리와 친구에 대한 질문
5월의 토요일 아침 보슬비 속에서 걸음과 질문이 오갔다. 걷기 시작할 때 내린 비는 얼마 안 가 그쳤고 투명해진 공기 덕분에 질문에 대한 대답도 투명하게 이어진 날이었다.
(*남편은 훈, 아내는 화로 표기합니다. 실제 대화 녹음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남편의 질문
화: 최근으로 해야 돼?
훈: 응, 최근 1,2주 정도.
화: 내가 뭘 걱정했더라. 음... (생각하는 중)
아, 몸이 늙는 게 조금씩 느껴지는 거. 뭐 사소한 것들이긴 한데 어쨌든 오십견도 오고, 왼쪽 눈도 좀 침침해진 것 같고, 오른쪽 골반도 조금 뻑뻑한 느낌이 들면서 관절 여기저기 기름칠이 필요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좀 걱정이었던 것 같네. 그래서 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는 게 현실화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어. 내성발톱 때문에 발가락도 조금씩 아프고 한데 무리해서 거기까지 갔다가 2,3일 걷고 못 걷게 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좀 들더라.
또 한 가지 든 생각은 자기도 알다시피 나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잖아. 최근에는 내가 관계면에서 어떤 점이 부족한가 이런 걱정도 좀 했던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만나다가도 최근에 이런 걱정이 좀 되더라. 괜한 걱정일 수도 있는데 나는 주기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같아.
훈: 관계에서 부족하다는 건 어떤 의미지?
화: 예를 들면 말에서 실수를 한건 없는지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은 없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
아 또 걱정했던 거 생각나. 책 내기 전에는 이런 걱정하게 될 줄 몰랐는데 책을 내고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책을 이대로 둬도 되나 이제 앞으로는 뭘해야 하나 그런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 것 같아.
근데 말하다 보니 내가 원래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나?
훈: 몰랐단 말이야?
화: 응, 자기 질문받고 대답하면서 처음 알았어. 내가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거.
훈: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어. 근데 요즘에 걱정이 많긴 했네. 걱정 인형을 하나 사드려야 하나.
화: 이왕이면 세 개 사줘.(웃음) 근데 다행인 건 내가 걱정하는 것에 휩싸이고 그러진 않는다는 거지. 그런 부분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게다가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남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인거지. 근데 정말 몰랐어. 걱정 많이 한다는 거. 이렇게 계속 살아와서 아예 못 느낀 건가.
훈: 걱정이 많다는 건 주변 환경에 대한 어떤 센서들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는 거지. 그래서 자기처럼 센서가 발달한 사람이 하는 역할이 있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사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싶고.
훈: 자기한테 비하면 내 걱정은 되게 심플한 것 같네. 별거 아닌 걱정 같기도 하고. 우리 여름휴가 계획을 잡아뒀잖아. 근데 지금 하고 있는 회사일 일정을 보니 이게 밀리지는 않을지 걱정이야. 나 혼자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 가족 여행이지만 우리 결혼 20주년에 맞춘 여행이라서 더 신경이 쓰이네.
화: 별거 아닌 걱정 아니네. 자기는 우리 가족이 여행 가고 함께 시간 보내고 하는 게 진짜 중요한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그게 사실 사소한 걱정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자기한테는 사소하지 않은 거지.
훈: 맞아.
화: 자기가 스케줄이며 예약이며 준비하면서 신경을 많이 썼잖아. 이게 뭐 내일 가자 해서 바로 떠나고 그런 여행이 아니니까.
훈: 자기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좋네. 어쨌든 최근 내 걱정은 자기한테 비하면 많이 심플한 건 맞아. 회사 일이 쉽지 않은 건 뭐 어제오늘 일도 아니라서. 근데 지금하고 있는 건 위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일이다 보니 걱정이라면 걱정이 좀 되네. (회사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길게 이어짐.)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다 이 정도 어려움은 있으니까 뭐. 디테일한 내용은 자기가 알아서 편집해서 글 쓸 거지? (웃음)
아내의 질문
훈: 밥 잘 사주는 친구. 농담이고. (웃음)
이 나이에 필요한 친구라. 나이가 조건으로 붙으니까 한번 더 생각하게 되긴 하네. 근데 꼭 지금 이 나이가 아니어도 친구를 생각할 때 나한테 제일 중요한 건 부담 없이 만나서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가 싶네.
화: 부담은 어떤 부담을 말하는 거야?
훈: 그러니까 서로의 시간에 대한 부담이라든지 만났을 때 비용에 대한 부담이라든지. 그러니까 그냥 툭 만날 수 있는 그런 친구. 그리고 내 지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내가 술을 못 마시니까 술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콜라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 있고. 나는 너무 늦게까지 이어지는 건 별로 선호하지 않으니까 그런 부담도 없으면 좋겠지.
훈: 좀 더 진지하게 말해본다면, 뭔가 배울 수 있고 사소한 거라도 깨달을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친구면 좋겠어.
화: 동감. 배울 수 있다는 거 좋은 것 같아. 나도 헤어지고 집으로 오면서 머릿속에 하나 남는 게 있는 날이 조금 더 기분이 좋은 것 같더라. 그게 뭐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훈: 그리고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깨달은 어떤 사소한 삶의 진리가 있으면 만남 자체가 더 즐거워지는 것 같아. 물론 매번 그럴 수는 없지. 만남 그 자체가 좋고 즐겁기도 하지만 가끔은 깨닫는 즐거움이 있으면 그런 관계는 더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에게는 그런 게 좀 큰 것 같아.
훈: 그러면 아내는 어떤 친구가 필요하십니까?
화: 예전에 자기한테 말 한 적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일상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같이 중요하게 여겨주는 친구면 좋을 것 같아. 청소년 아이들은 자기 친구를 부모가 부정하면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잖아. 그거랑 좀 비슷한 것 같은데 서로의 삶에 중요한 것이 별거 아니어 보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무게를 두고 이야기하는 친구. 그거 하나만으로도 관계에서 많은 게 해결이 될 것 같긴 해.
참신한 질문은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어 주지만 특별하지 않은 질문도 그 나름의 가진 힘이 있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거듭해 가면서 느끼는 건 질문 자체가 가진 힘이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도 올라선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하게 되고, 답을 하는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물론 자신을 정리하는 계기가 된다. 이 날의 대화에서는 후자의 힘을 더욱 크게 느꼈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것이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우리 집 거실 한켠에는 메리 올리버의 문장이 쓰여 있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이 두 가지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사랑하기 위해 더욱 질문하고, 질문하면서 더욱 사랑하게 된다.
질문 부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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