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픈 묘비명
즐겨보는 프로그램 <알쓸별잡 지중해> 편을 보며 궁금해졌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앉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는 <알쓸 시리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지점이 흥미로워 빼놓지 않고 보고 있는데, 지난주 안희연 작가의 이야기에서 더욱 몰입했다. 작가는 로마에 있는 "비가톨릭 신자 묘지"에서 두 영국 작가의 묘비를 찾았는데, 그중 본인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던 작가 존 키츠의 묘비명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이가 잠들다".
그리고 그 묘지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언젠가 로마에 다시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그들의 이야기는 각자 남기고픈 묘비명에 대해 것으로 이어졌다. 물리학자는 물리학자답게, 시인은 시인답게, 건축가는 건축가답게 묘비명을 이야기했다. 그중 죽음을 두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닥에 물웅덩이 같은 묘비를 만들어서 묘비명을 보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의 얼굴이 물에 비치도록 하고 싶다는 유현준 교수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남편의 묘비명을 물어봐야겠다고.
(*남편은 훈, 아내는 화로 표기합니다.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화: 지난주에 <알쓸별잡> 보면서 질문 하나 킵해뒀어. 자기는 어떤 묘비명을 남기고 싶어?
훈: 음... 쉽지 않은 질문이라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잠시 침묵 속에 걷기)
화: 나 생각났는데 먼저 할까?
훈: 그럼 좋지.
화: "세상에 무해하고 싶었던 소망을 이루다." 어때?
훈: 죽음으로서 그 소망을 이루었다는 뜻이지?
화: 그렇지.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고 싶은 소망이 있지만 인간으로 살아있는 한 불가능한 것 같아서.
훈: 그렇긴 하네. 나도 이제 생각났어.
"세상 한구석을 비추다."
화: 조금 더 설명을 해주면 좋겠는데?
훈: 비유적인 건데, 그러니까 우리 가족도 세상의 한 구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 구석을 포함해서 세상에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한 바가 있는 삶을 살다 간다. 그런 의미야. 그런 삶을 희망하는 것이기도 하고.
화: 같이 구석을 비추며 살아봅시다요.
훈: 그럽시다요.
지난 4월 우리 가족 셋 다 같이 동네의 작은 언덕을 올랐을 때 오갔던 질문과 대답이 생각났다.
죽기 직전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기. 예를 들어, 어디에, 누구와, 어떤 분위기인지, 하루 중 어느 때인지 등등. 그날의 이야기는 아쉽게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셋 모두 그날의 분위기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은 바람은 동일했다. 마지막을 홀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다.
죽음을 너무 멀리 두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유현준 교수의 말처럼 죽음을 두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면 오히려 그 삶이 더욱 영글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질문 부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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