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부부_8

일부러라도 "만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볼까?

by 툇마루

주말에 누리는 느긋한 아침잠을 포기하지 않던 아이가 어쩐 일인지 동행을 결심하고 함께 나섰다. 기온이 살짝 내려갔던 주말 아침, 6시 반쯤 집을 나서서 8km가량을 걸었다. 걷기 시작해서 5km쯤 걸었을 때 만난 카페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며 질문 시간을 가졌다.


(*아이는 안, 아내는 화, 남편은 훈으로 표기합니다. 실제 대화 녹음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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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질문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운 부분 말해볼까?


안: 심신이 건강하다는 것. 옥시토신이 충분히 분비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

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게나.

안: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건 "신(身)"의 건강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심(心)"의 건강도 만족스럽다는 거지.

단지 요즘 약간의 불만족스러운 것은 엄마가 양배추를 자주 주신다는 것.

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받아들이시오. (웃음)

내가 이 질문을 왜 하게 되었냐면, 갑자기 지금 순간이 참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동안 너무 더워서 야외에서 길게 걷기가 어려웠잖아. 길게 걷는 것이 계속 절실해지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날씨가 괜찮을 것 같아서 나왔는데, 마침 날씨도 걸을만한 데다가, 5km 걸었는데 오랜만인데도 불구하고 컨디션도 괜찮아서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고, 쉬러 들어온 카페에서 이렇게 커피와 빵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거. 그리고 사랑하는 안이까지 오늘 같이 걸었다는 거.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야.

훈: 나는 요즘에 아침마다 일어나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거지.

화: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게 만족스러운 거야?

훈: 일단 매일 5시에 눈을 뜰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이라는 것.

화: 그렇지. 그동안 자기가 정말 꾸준히 체력을 쌓아온 거지.

훈: 그리고 또 만족스러운 것 하나는, 나라도 좀 안정되면서 다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당일치기든 박을 하든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맘 편히 여행을 계획할 수 있는 삶이라는 거, 그게 중요해. (웃음)

화: 여행을 계획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게 어떤 삶이야?

훈: 그러니까 어쨌든 여행을 계획하는 건 내가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지. 나라의 상황도 그렇고, 개인적인 시간이나 재정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상황이 된다 해도 갈 수 없는 건데, 마음의 여유도 있으니 계획하는 것 자체로 만족스러워.

막상 여행하는 시간보다 계획하고 출발하는 그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잖아. 그래서 나 개인적으로는 계획하는 시간에 만족도가 엄청 높지.

안: 오, 아빠 뭔가 철학적인데!

화: 실제로 여행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게 좋다는 거지? 그러고 보면 자기는 정말 잘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아. 기다린다는 게 힘든 사람도 많거든.

안: 나는 아빠 닮아서 기다리는 건 잘 되는데, 계획하는 건 아빠 안 닮았나 봐. 어려워.

훈: 그럼 계획을 해주는 사람 옆에 딱 붙어있어. 아빠 옆에. (웃음)

그러면 자기는 지금 순간 말고, 삶에서 만족스러운 건 뭐야?

화: 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요즘은 질문 부부를 계속할 수 있는 게 꽤 큰 만족이야. 사실 우리가 벌써 3년 정도인가? 질문 시간을 갖고 있잖아. 그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남편이 있고 이런 대화가 서로 가능하다는 게 브런치에 정리하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 처음 생각해 보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지금은 이 시간이 점점 더 편해지고 있는 것도 만족스럽고.

안: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다가) 나는 지구상에 있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어서 참 만족스러워. 음식에 대한 내 기대치가 낮은 것도 다행스럽고. (다 같이 웃음)

일단 내 삶은 그렇게 바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

화: 그게 무슨 의미야? 바쁘지 않아서 만족스럽다는 건 어떤 의미지?

안: 일단은 경제적으로 그렇게 빠듯하지 않다는 의미도 있고.

훈: 감사하시게나.

안: 맞아. 그건 늘 감사해.

‘억지로라도 엄청 잘해야 해.’ 그런 것 없이 내가 알아서 즐겁게 하다 보니까 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지는 것 같아.

훈: 그렇지. 잘 산다는 게 사람마다 기준이 정말 많이 다르더라. 어느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이 잘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자격증을 여러 개 가진 것을 잘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삶이라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을 수 있겠지. 반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아야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아빠는 네가 네 나름의 성취를 이루면서 살면 좋겠어. 모두에게 똑같은 성취를 이루면서 살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지.

화: 그렇지.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만족스러운 우리 딸은 어떤 성취를 이루면서 살아가려나. (웃음)

안: 난 지구상에 계란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아직은 닭이 공룡처럼 사라질 염려는 없는 것 같고.

훈: 기대치가 낮아서 만족감이 높은 딸이라 참 다행이야. (웃음)




만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공룡에 대한 이야기로 엉뚱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이 또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붙들어 "만족"의 이름을 붙여보는 것.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보고 싶다면 별 것 아닌 것을 붙들어 들여다보자. 분명 만족스러운 무언가가 섞여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오래 보아야 만족스럽다
오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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