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부부_9

쉽지 않았던 질문 부부의 처음

by 툇마루

<질문 부부>의 처음에 대해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다. 질문 부부를 다시 제대로 써보려 하니 그 시작이 어떠했나 되짚어보고 싶었다.

코로나, 우울했던 시기, 부부 관계가 힘들었던 시기... 여러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서 엉켜 있었고, 어떤 부분은 2년이 넘는 시차가 있음에도 선후가 바뀌어 있기도 했다. 핸드폰 속 사진과 일정표, sns에 올렸던 글들을 토대로 굵직했던 기억을 나열해 놓고 정리하고 나니, 어질러진 서랍을 정리한 듯 소소한 개운함이 있었다.

삐걱거렸던 질문 부부의 처음을 아홉 번째 글에서 새삼 정리해 본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 자기반성이 잦은 사람, 자신에게 자주 실망하는 사람 그래서 자주 우울감에 젖는 사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울을 모르고 지내던 이들조차 우울의 무거움을 알아갈 무렵, 평소보다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무겁게 우울을 겪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 떨쳐내려는 의지 덕분이었는지 무기력의 지점까지 가진 않아서 이것저것 나를 살려볼 것들을 찾아댔다. 그러다 세바시를 통해서 <인생 질문>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내게 해본 적 없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낯선 질문에 답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첫 질문부터 텅 비어있던 답변 페이지를 이미 꽉 채워가고 있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만큼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너무 잘 알아서 엄격한 것이 잘 맞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책 속의 질문에 하나씩 답변을 해가면서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조차도 나에게 마땅한 질문을 해주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오해를 쌓아왔다는 것을. 그 결과로 스스로를 괴롭혀 왔다는 것을.

책 속의 질문에 하나씩 답해가던 중 <당신은 자신의 고유한 욕망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라는 제목의 단락을 만났다. 그 내용 중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나를 덮쳐온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크게 차올랐고, 이성을 차릴 새도 없이 크게 소리를 내며 쏟아낸 바람에 같은 공간에 있었던 남편이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나를 조이고 있던 무엇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것 같던 그 순간은 후련하기보다 너무 오래 조인 탓에 오히려 아팠다. 그럼에도 아직은 그 아픔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나로부터 나를 지켜야 할 때가 가끔씩 찾아오기 때문이다.

손아귀에 꽉 쥐고 있던 내 안의 규칙들을 느슨하게 하기란 마음먹은 만큼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 지금 이거 왜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싶어서 하는 것 맞지?’ 이런 질문들이 때때로 떠올라주었다. 꽤 긴 시간을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일어설 힘을 조금씩 찾아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의 관계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나를 몰랐던 만큼 남편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내 안에 안전하게 자리 잡고 있던 남편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무렵 남편에게 던지기 시작했던 나의 질문들은 가시였고, 무기였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남편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에 우리는 꽤 사이가 좋았고, 대화도 곧잘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전까지의 대화에서는 남편의 내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아픈 부분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질문이기에 공격적이기보다 수용적인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남편에게 던지기 시작했던 나의 질문은 서툴기 짝이 없었고, 그를 몰랐던 만큼 아픈 부분을 찔러대기도 했다. 뒤늦은 나이에 자신을 알아가느라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남편도 힘들다는 표현을 숨김없이 뱉었다. 그 말에 덜컥 겁이 났고 급히 도움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상담을 전공한 친구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소개를 받아 전문가와 부부 상담을 하기도 했다.

결혼하고 십수 년을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부부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쓰나미가 몰려왔던 시기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쌓아왔던 관계가 아주 헛것은 아니었는지, 쓰나미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한 노력만큼은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때 잡았던 기둥들이 믿음직스러운 것들이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떠내려가는 부유물에 여기저기 생채기도 생겼지만 잘 버틴 덕분에 서서히 물이 빠진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렇게 힘이 빠진 상태로 우리는 같이 걷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침잠이 없었고, 나는 아침잠이 많았지만, 주말 아침이면 가능한 같이 나서서 걸었다. 짧게는 5km, 길게는 20km도 걸었고, 동네 한 바퀴부터 멀리 걷기 좋다는 길까지 많이도 걸었다. 걸으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우리 이전처럼 속 얘기는 질문하지 말고 지낼까?”

이 질문을 하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는 조금씩 아무는 듯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만족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보고 있던 드라마 속 할머니 한분이 이런 대사를 했다. “속 깊은 얘기꺼정 남편이랑 다 하려고 하지말어. 그런 건 동네 여자들이랑 만나서 풀어.” 그 드라마의 제목도 대사도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분명 내게 하는 말 같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할머니의 대사를 전하면서 그리 물었던 것이다. 내가 먼저 이리 물어주면 남편이 내심 고마워하리라고 짐작했다. 예상하기로 남편은 ‘예전의 우리가 하던 대로 즐거운 대화만 하자’ 할 거라고.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 포기하지 마. 한번 해볼게.”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뒤로 내가 했던 대답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마 남편도 나의 당황을 제대로 목격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산길을 걷고 있었고 나는 잠시 멈춰 섰던 것 같다. 당황스러웠던 순간이 지나고 그 말속에 들어있는 남편의 마음이 조금은 짐작되었다. 쉽지 않았던 시간을 지나면서 남편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사람에게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내면을 들여다보기 어려워하는 남편에게 질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기 위해 찾아냈던 책은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박재연)였고, 네 번으로 쪼개어 함께 읽는 시간을 가지며 덜 서툴게 질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고도 여러 날 동안 남편은 어떤 질문은 ‘너무 어렵다’ 했고, 어떤 질문은 한참 고민하고도 ‘대답이 생각이 안 난다’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해서는 안될 것 같던 우리 부부의 질문 시간이 시작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남편은 대답이 편해진 것뿐 아니라 꽤나 깊은 내면의 질문들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얼마 전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자기가 질문해 오면 대답을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어려웠지. 그런데 지금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는 걸 아니까 편해.”

매번 찰떡 같이 알아듣는 대화가 오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질문부터 떠오르지 않는 날도, 단답형의 대답으로 끝나는 날도 있다. 기대치가 높았던 때엔 이런 날이 실망스럽게 남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대를 거의 가지지 않고 질문을 시작한다. 아마도 그것이 3년의 질문 시간을 해오면서 가지게 된 가장 좋은 대화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