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부부_10

듣기 싫은 줄 몰랐던 말

by 툇마루


내성 발톱이 일으킨 염증 때문에 아침 걷기를 하지 못한 지 3주가 지난 즈음이었다. 주말 아침 늦잠의 달콤함보다 아침 걷기의 상쾌함을 더 즐기게 된 터라 그 멈춤에 아쉬움이 컸다. 걷지 못하다 보니 주말 아침 함께 걷는 동안 이루어지던 질문 시간까지 덩달아 소원해지고 있었다. 남편까지 걷기를 멈출 수는 없었기에 혼자 나갈 준비를 하는 남편을 보게 된 아침, 그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함께 걷지는 못해도 질문 시간은 더 미루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우리가 주로 걷는 몇 코스 중에 마침 쉬기 좋은 타이밍에 카페가 있는 길이 있다. 한두 번 그곳에서 아침을 해결하다 보니, 걷다가 공복에 먹는 그 샌드위치 맛이 불쑥 생각나서, 샌드위치를 목적으로 걷는 날도 생겼다. 그날도 그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남편이 걸어서 도착할 시간에 맞춰 시동을 걸었다. 가는 동안 어떤 질문이 좋을까 떠올려보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질문 하나가 떠올랐는데 곧바로 무시했다. 다시 다른 질문은 없을까 짜내어 보았지만 한 번 떠오른 그 질문은 지워지지 않았다. 듣기 싫은 말이라니. 이 질문은 왜 떠올라서는...

어떤 질문은 묻기 전부터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 있다. 이번 질문이 그랬다. 어떤 대답이 날아올지, 혹은 그 대답이 한두 개가 아니라 계속 쏟아지면 어찌할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지나쳐버릴 수 없었던 건, 언젠가는 꼭 묻고, 꼭 들어야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용감해져야 했다.


“상대방이 종종 하는 말 중에 듣기 불편한 말 말해주기 하자. 아, 하나씩만.”

“하나씩?”

“응, 하나씩만.”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씩이라는 단서는 없었다. ‘듣기 싫은’으로 하지 않고 ‘듣기 불편한’으로 조금 둥글려 질문하면 대답도 좀 더 둥글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뿐이었다. ‘하나씩’은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생각난 수였다.

“나부터 말하자면, 아내가 어떤 설명을 한 다음에 ‘뭔 말인지 알겠지?’ 하는 말이야.”

전혀 몰랐다. 이 말을 자주 한다는 것도, 불편하게 듣고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몰랐지만 바로 납득되었다. 그 말을 듣는 입장에 곧바로 이입이 되었다. 잘못 알아들었다면 다시 설명할 요량으로 물어보는 말이었지만 뉘앙스에 따라 권위적인 투로 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의 입을 통해서 그 말을 듣고 보니 언젠가부터 남편과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한 후에 마침표처럼 붙이고 있었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실제로 이날의 질문 시간 중에도 이 말이 튀어나와서 입을 막으며 ‘나 이 말 정말 자주 하는구나’ 하며 어이없게 웃었다.


“그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어?’는 어때?”

“그 말도 별룬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어? 이 말은?”

“음...”

“‘내 말의 의미가 잘 전달되었어?’ 이건?”

“그건 괜찮은 것 같아.”

서너 번 조금씩 바꾸면서 청자인 남편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된 문장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기에 적극적으로 수정했다. 특별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 꽤나 거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동안은 왜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아니, 막 엄청 기분이 나쁜 건 아니라서. 근데 질문을 받으니까 이 말이 생각나더라고.”


“내 말의 의미가 잘 전달되었어?” 영 입에 붙지 않고 어색해서 그 뒤로 몇 번 사용하지 않고 “뭔 말인지 알겠어?”와 함께 내 입에서 사라진 문장이 되었다. 대화를 하면서 내 말이 잘 전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을 접었다. 이날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받아들인 현실은, 각 사람의 말의 의도가 100 퍼센트 전달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영화 <컨택트>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의 언어처럼 시간을 초월한 소통 방식이라면 가능하려나.


“그러면 아내는 듣기 불편한 말이 뭐야?”

질문 시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남편은 되묻는 것을 종종 잊었다. 본인이 해야 할 답변을 찾는데 몰두한 탓인지,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궁금하지 않은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았기에 모르는 채로 남아있지만, 이제는 잊지 않고 어김없이 되물어 온다.

“나는 자기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할 때 좀 불편해지지.”

“그게 어떤 때야?”

“예를 들면, 어머님과 통화하고 난 후라든지, 아이랑 둘만 시간을 보내고 왔을 때라든지. 무슨 얘기했는지 궁금해서 물으면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종종 하더라고.”

“근데... 실제로 기억이 안 날 때가 많아.”

“아...”


이 날은 남편의 대답에 개운치 않은 채로 끝이 났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늦은 귀가로 아빠에게 픽업을 부탁해 함께 들어오는 아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도 남편과 크게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아빠랑은 크게 의미 있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잘 없어서 기억에 남지 않는 것 같다고. 가끔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오늘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 돌아오는 주말에는 뭘 먹고 싶은지에 대한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엄마랑 하는 대화와 아빠랑 하는 대화는 전혀 다르다는 아이의 말에 남편의 대답이 뒤늦게 이해되었다.

이 질문 시간 이후로 남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뱉기 전에 잠시 머무는 시간이 생겼다. 그런 후에 대단한 대답이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고민하는 짧은 순간이 추가된 것만으로 그냥 뱉는 말이 아니구나 싶어 불편한 마음이 훨씬 수그러든다.


묻지 않아서 몰랐던 상대의 말. 묻고 나서 수정된 나의 말로 다음 질문 시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나의 나약한 부분을 보호할 수 있는 만큼의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다. 혹여 좋은 의도로 시작된 질문 시간에 내 기분이 망가지고 상대의 기분이 망가지는 건 모두가 바라지 않는 결말이니까. 유치하더라도 얇은 갑옷을 입힌 질문을 던진다.

“하나씩만 말하기로 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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