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부부_7

배우자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면

by 툇마루

함께 걸으며 나누는 질문 시간을 가장 좋아하지만 너무 더운 여름과 너무 더운 겨울에는 종종 카페를 찾아 질문 시간을 갖기도 한다. 흐린 기억에 의하면,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도 걱정되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 무렵부터 (열여섯 살쯤이었던가..?) 가끔씩 둘만 카페 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8월 주말 아침, 기온이 많이 높은 아침은 아니었지만 걷고 싶은 습도가 아니라는 핑계로 카페를 찾았다. 남편은 카페라테, 나는 카푸치노를 앞에 한 잔씩 두고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남편은 훈, 아내는 화로 표기합니다.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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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질문

만약에 책을 출간하게 된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어? 간단한 내용이랑 가능하다면 제목까지 한번 만들어볼까?


훈: 일단 장르는, 자기도 예측 가능하겠지만 SF 소설. 근데 거기 하다 더 추가해서 SF 역사 소설. 그러니까 자기가 최근에 읽은 <화재감시원>처럼 유럽의 과거 어느 한 시점으로 가는 것도 괜찮고,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실화를 배경하는 소설도 좋을 것 같아. 정세랑 작가 소설 있잖아, 뭐였더라?

화: <설자은 시리즈>. 그거 우리 식구 정말 재미나게 읽었지.

훈: 맞아. 그 책처럼 과거의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허구로 이어지는 그런 소설 한번 써보고 싶어. 만약에 쓴다면 말이지. 시대 배경이 있는 소설에 내가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 예를 들어 고려시대 특정한 시점으로 가서 그 무렵에 일어났을 법한 어떤 일을 만들어보는 거지.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기록이 비어있는 공간을 찾아서 사건을 하나 만들어 넣는 거지.

화: <설자은> 읽으면서 느낀 게 그 시대에 대한 디테일한 고증이 숨어있는 게 매력인 것 같아. 그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섬세한 노력.

훈: 그렇지. 그런 부분이 정사로서 인정되는 역사와 맞아떨어지는 데서 오는 쾌감 같은 게 있지.

화: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그러면서 놀라기도 하고 그러잖아.

훈: <설자은>을 읽으면서 신라 진흥왕의 성격이라든지 왕에 대한 묘사가 사료로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소설 속에서는 되게 생생하게 묘사가 되거든. 굉장히 권위 있으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어떤 존재로 표현되는 거. 그게 정세랑 작가의 상상력인 거지. 그 시대로 들어가서 피부로 느끼게 하는 묘사가 있는 소설이 좋아.

화: 그러면 선호하는 왕이나 쓰고 싶은 시대는 언제야? 혹시 구석기시대 소설 어때? 우가우가 이러면서. (웃음)

훈: 구석기는 너무 남아 어떤 있는 사료가 없어서. (웃음)

화: 아, 농담이야. 진지하게 받지 말기. (웃음)

훈: 반대로 사료가 너무 많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는 빼고 오히려 고려시대나 삼국시대 그 정도가 좋을 것 같아. 그중에서 선택한다면 고려시대.

화: 그러면 <설자은 시리즈>처럼 살인 사건도 일어나고 그런 분위기야? 아니면 어떤 분위기로 쓰고 싶어?

훈: 길게 시리즈로 한다면 해결해야 하는 사건이 있어야 아무래도 긴장감도 생기고 소설을 끌고 가는 흐름이 생길 것 같긴 한데, 꼭 사람이 죽거나 하는 사건은 아니어도 될 것 같아. 디테일한 것까지는 생각하기 쉽지 않네.

화: 자, 그럼 제목으로 가볼까요?

훈: 제목은 난 좀 평범하고 간단하게 할 것 같아. 고려시대에 있었을 법한 시대 색깔에 맞는 사람의 이름이라든지. 아니면 실존했던 사람 이름을 가져다가 차용한다든지. 예를 들어 영화 <동주>처럼 나는 "몽주".

화: 정몽주의 몽주?

훈: 응. 아니면 정몽주 호가 포은이잖아. 제목을 "포은"이라고 한다든지.

화: 오호, "포은" 괜찮겠는데? 좀 유명한 호를 차용해 오는 거지.

훈: 그렇지.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이름이나 호로 해서. 그래서 그 인물을 깊이 공부해 보고 기록에 없는 부분은 내가 상상해서 묘사하고, 그 시대에 걸맞은 얘기를 만들어보는 거지.

화: SF 역사 소설로 심플한 제목 좋은 것 같아.


훈: 자, 그럼 이제 자기 책은?

화: 나는 어쨌든 두 번째 책이 되겠네. 나도 사실 소설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왠지 엄두가 안나. 나한테는 장벽이 정말 높게 느껴지는 장르야. 현실적으로 두 번째 책을 쓴다면 나는 에세이를 쓰게 되겠지. 이번엔 조금 가벼운 책이었으면 좋겠어. 제목부터 약간 농담스러운 그런 책. 예를 들자면 "그래서 어쩔?" 이런 느낌. (웃음)

훈: 그게 제목이라고?

화: 응. 그래서 내용은 내가 브런치에 종종 쓰는 사회 감수성에 대한 그런 류의 글들 있잖아. 그런 글을 툭 꺼내놓는 거지. 그런데 독자들에게는 그래서 뭐 어찌하라는 건 아닌 그런 글. 이 나라, 이 사회 공동체에서 살면서 꺼내보고 싶었지만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던 말을 책 제목을 핑계로 툭툭 던져 놓는 거야. 책 보면서 그런 순간 있잖아,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었구나' 싶은 순간. 크고 대단한 주제는 아니지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하는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순간이 선물 같았거든. 그래서 작가들에게 엄청 고마워하고 혼자서 내적 친밀감을 갖기도 하고.

근데 그런 순간이 있었다고 해서 내가 어찌하고 있는 건 거의 없듯이, 내 책을 읽는 독자도 그래서 뭐 어찌해야 한다라고 하지는 않는 거지.

훈: 예를 든다면 어떤 내용이 있을까?

화: 다른 나이대의 상대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라든지,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한 것이라든지, 속해있는 어떤 공동체 안에서의 태도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오히려 자신에 대해 우연히 처음 생각하게 된 것도 있을 수 있겠지. 다양하겠지만 이 사회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아마도 주된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네. 그러면서 그것에 대한 나의 선택과 너의 선택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말하고.

훈: 자칫하면 무책임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오히려 그런 가벼운 제목이 자기가 쓰려는 의도를 잘 전달하지 못할 것 같은 거지.

화: 그럴 수도 있겠네.

훈: 어쨌든 '그래서 어쩔?'의 느낌으로 매 글이 마무리되어서 가볍게 보이지만, 글의 흐름은 '그래서 나는 사회의 통념에 맞추기보다는 내 식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보겠다'라는 의지가 담겨있겠네.

화: 역시! 맞아, 그 표현이 딱 맞아.

훈: 사소하지만 어떤 독특한 생각, 고유한 판단과 고유한 가치들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는 게 잘 담긴다면 좋겠네.

화: 장기하 노래 중에 "그건 니 생각이고" 그런 가사 있잖아. 그런 뉘앙스인거지.

그리고 <1cm 다이빙>이라는 책이 있거든. 얕지만 어쨌든 다이빙을 하긴 한다는 거. 그런 거지.


훈: 와, 우리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을 책 가지고 엄청 오래 떠들었네. (웃음)

화: 그러게. (웃음)




질문 부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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