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딱히 눈에 띄는 간판 없이 건강한 빵을 만들어 파는 빵집이 있다. 그 길을 지날 때 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두어 번 정도 들러서 빵만 사서 나왔다. "수고하세요~" 이외의 말은 없었다. 귓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끊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더 컸다. 그러다 그날은 빵집 주인장과 선 자리에서 30분을 넘겨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에도 무인으로 가게 열려 있어요."
무인으로 운영하는 빵집이라니, 참신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 용기가 놀라웠다.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한번 해보려고요. 저도 무한 신뢰는 아직 부족해서 유한 신뢰하고 있어요. CCTV요."
그의 표정에서 보이는 단단한 미소에 나의 물음이 부끄러워지면서도 마음이 확 열려, 양쪽 이어폰을 빼어 주머니에 대충 넣었다.
"장발장 생각하셨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오후에 무인으로 한지 며칠 되진 않았는데 아직은 괜찮네요. 근데 장발장 같은 상황이면 오히려 먹고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어린애들이 빵을 헤집어 놓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저녁에는 셰프로 일하게 되어서 이렇게 운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어떤 분이 무엇을 위해 운영하는 공간인지 설명하는 그의 눈에서, 웃는 주름에서, 목소리에서 즐거움이 팡팡 터졌다. 자신을 막사니즘의 창시자로 설명했지만,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길을 찾고, 배우고, 또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 큰 아이가 벌써 대학생이 된 세 아이의 엄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배움으로 길을 열어가고 있었다. 빵을 만드느라 새벽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도 피곤한 기색 없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웃에 사는 분이 문을 열고 팔을 길게 뻗어 귤을 한 봉지 나눠주고 가셨다. "귤을 좀 땄어." 대화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으셨는지 그 한 마디가 다였다. 어색하지 않은 풍경에서 자주 무언가 오가고 있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무인가게를 열게 하는 힘일 수 있겠다 싶었다.
모르는 사람과 30분을 훌쩍 넘긴 대화라니, 대화를 끝내기가 아쉽기까지 하다니... 빈으로 가는 기차에서 제시를 따라 내린 셀린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빵집 주인장은 내 이상형도, 남성도 아니긴 했지만. (웃음) 기차에서 따라 내리진 않았어도 무려, 내가, 먼저, sns 아이디를 물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토록 작은 행복을 크게 만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사람 속에 담긴 생기가 이토록 타인을 집중하게 만드는구나 했다. 폭넓게 살아가는 그분에 비해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분에게 할 말이 딱 하나 떠올랐다.
"글을 꼭 쓰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멋진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진심으로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앞으로 그 길을 지날 때 빵을 사지 않는 날이어도 고개를 돌려 작은 인사를 나누게 되겠지. 어떤 날은 그도 피곤함에 마른 미소를 보내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무인 운영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날도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작은 빵집에서 뿜은 온기은 분명 어딘가 남아있을 것이고, 나를 비롯한 누군가는 그의 온기를 닮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테니까. 다음에 빵집에 갈 때는 나도 내 이야기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내가 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말에 조촐한 나의 이야기를 한 권 드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