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카푸치노,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든 나의 손을 내려다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카푸치노를 다 마시고 더 이상 온기가 없는 컵이 시려도 좋은 오후였다.
오랜만에 집 안 구석구석을 닦았다. 변기를 닦고, 벽과 침대 사이 청소기가 지나가지 못하는 구석을 닦았다. 고르게 꽂힌 책들 앞으로 엷게 쌓인 먼지를 닦고, 액자가 올려진 선반과 액자를 닦았다.
열흘 전쯤 남편이 세탁소에 맡기길 부탁했던 바지와 지인에게 보낼 책 두 권과 양손 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현관을 나왔다. 주머니엔 언제나처럼 휴대용 장바구니를 넣었다. 세탁을 맡길 바지와 재활용 함에 넣을 바지가 헛갈리지 않게, 귀에 꽂은 이어폰의 오디오북 재생은 미뤘다. 재활용 쓰레기장에서의 분류가 끝난 뒤에 다음 목적지인 세탁소로 향하면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우주선에 고립된 주인공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탁소에서 우체국까지 볼일을 끝냈지만 조금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냉장고에 네 알 남은 달걀이 생각났고 조합매장으로 향했다. 계란을 사면서 돼지감자차도 골랐다. 추워질수록 커피뿐이던 집에 차 종류가 다양해진다.
종일 드러나지도 않는 집안일을 하게 되는 날이 있다. 어떤 날은 억지로, 어떤 날은 즐겁게. 바빴던 일정으로 미뤄뒀던 집안일을 해내는 날은 대부분 즐거운 쪽이다. 미뤄둔 과제가 하나씩 사라지는 개운한 즐거움.
집으로 가는 길을 일부러 늘리면서 카페에도 들러 카푸치노 한잔을 손에 들고 걸었다. 시리던 손이 따뜻해지면서 차가워진 얼굴과 딱 조화로운 상태가 되었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하기 싫었던 것도 가볍게 해내는 날, 평소에는 아무 감정 없던 것에도 의미가 담기는 날, 그래서 사소한 글을 쓰고 싶어지는 날. 사소한 사진을 남기고 싶어지는 날.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