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때는 질문하지 말아 줘
화: 우와! 자기야, 저 나무에 연두색 보여? 저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두 딱 그 색깔이야!
훈: 어... 그렇구나.
자동차 전용 도로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 도로 가에 심긴 나무가 초록이 되기 전의 진득한 연두색의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살짝 흥분해서 남편의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고 갑자기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화: 지난 일주일은 어땠어? 날씨로 얘기해 보기 할까?
훈: 아, 어...
평소에 말이 많은 남편이 운전 중에 말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복잡한 내용이라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왔던 지식은 운전에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한 내용이라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마음에 대한 것에는 곧바로 경고등이 켜진다. ‘맑음이나 흐림, 맑았다가 갬’과 같은 한두 단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말이다.
질문 시간을 갖기 시작하면서, 차에서 이동하는 시간이야말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 방해될 것도 없고, 작은 목소리도 들릴 수밖에 없는, 대화에 최적인 조건. 지난 일주일을 떠올려보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차선을 바꾸기 위해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앞뒤 차량을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들 “흐림이야!”라고 한 마디 뱉은 것이 뭐 그리 어려운가 말이다.
하지만 질문 시간이 거듭될수록 남편에게는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동 중인 차 안이 질문 시간의 최적의 장소라는 것도, 지난 일주일간 마음의 날씨를 말하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것도 나만의 생각이었다. 평소 운전을 즐긴다고 알고 있었던 남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중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질문이 남편에게는 운전 중에 갑자기 만나는 과속 방지턱에 비할 수 없는 난이도였다.
“잠깐만.” 하고 시간을 번 남편은 뭐라도 대답을 내놓을 것처럼 보이더니, 어느새 힘이 들어갔던 어깨를 내리며 숨을 뱉듯 말했다.
훈: 운전할 때는 질문 안 하면 좋겠어.
화: 아, 어...
또 한 번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제주올레를 걸으면서 나는 길 위야말로 질문 시간을 갖기에 최적의 시간이라 생각했다. 탁 트인 길에, 사람도 거의 없어서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은, 대화에 최적인 조건. 하지만 그 또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마음에 대한 나의 질문에 남편은 말했다.
훈: 올레길에서는 질문 안 하면 좋겠어. 특히 갈림길에서는.
화: 아, 어...
남편은 올레의 루트를 알려주는 이정표를 찾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중하고 있었고, 걷고 있는 길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 했다. 운전할 때의 상황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걸을 때도 어렵다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언제 괜찮다는 것인지, 질문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말은 진심인 건지.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걷다 보니 배낭을 멘 어깨도 다리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아 카페를 만났고, 배낭, 모자, 무릎 보호대, 팔토시, 등산화 등 조였던 모든 것을 풀어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하루에 20km 정도의 올레를 걸으면서 행여나 길을 잘못 접어들어서 다시 길을 되돌아오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니 올레에서는 어려운 질문 하지 말아 달라고. 완전히 머리를 비우고 생각해야 하는 마음에 대한 질문은 편안하게 앉아서 하면 좋겠다고.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걷는 동안 힘들어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나였고, 길을 헤매지 않고 한 걸음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은 나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생각할수록 남편에게 미안해지고 고마워졌다.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처져있던 남편에게 그대로의 마음을 전했다. 그제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식도를 타고 시원하게 내려갔다.
나에겐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것도 남편에게는 뜨거운 고구마 먹기가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상황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니, 손가락을 꼽아 세어보면 더 많을 수 있겠다. 이 날 카페에서 이어진 대화로 우리 두 사람 모두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건 어려운 사람이라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다. 다만 두 가지 일이 안 되는 상황이 각자 다를 뿐.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카페에서 질문 시간을 갖거나 우리 동네 산책로(잘 아는 길)를 걸으면서 질문 시간을 갖기로 했다.
20년을 살아도 아직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다. 곁에 머문 시간에 비례해서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건 아니다. 해서, 촉이나 직감 같은 것을 믿고 함부로 어림짐작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