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4년여 전 질문 시간의 처음에 우리는, 질문에 따라 대화가 아주 짧기도, 끊임없이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대화의 장단은 상황에 따라 당연히 차이가 생기는 것이지만 그때와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초반에 우리의 질문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는 애초에 가졌던 질문의 의도에서 벗어나 삼천포에서도 한참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면 우리의 대화는 삼천포항을 넘어 바다 어딘가에 둥둥 띄워진 채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현재는 그런 서툰 시간을 훌륭히 졸업했다거나, 탁월해진 대화 실력으로 명쾌하게 대화를 마무리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회를 거듭하면서 삼천포로 향해가는 대화를 다시 본궤도로 돌리는 빈도가 늘어났고, 애초에 곁길로 벗어나지 않으려 이정표를 자주 확인하기도 한다. “우리 질문이 뭐였지?”라거나, “질문의 의도가 이게 맞아?” 하고 물어가며 길을 찾는다.
반대로 대화가 짧게 끝나버리는 경우는, 말 그대로 대화가 어느 순간 뚝 하고 끝나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끝나버린다는 느낌도, 그로 인한 아쉬움도 대부분 나만의 것이었기에 나만 지나간 대화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면 별다른 어려움은 생기지 않았다. 남편은 짧게 끝나는 대화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짧게 끝나버리는 대화의 경우는 현재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조금 달라진 건 때때로 내가 조금 더 묻는다는 것이다. 그 때때로라는 것이 기분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훈: 장래 희망을 말하는 꿈 말고, 밤에 자면서 꾸고 싶은 꿈을 본인이 연출할 수 있다면 이런 꿈이면 좋겠다 하는 게 있어?
질문 시간을 갖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에, 주로 내가 질문을 던지다 이 날은 남편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 반가움 덕분인지 나의 대답에도 약간의 설렘이 묻어났다.
화: 20대로 돌아가서 그 당시 실제의 나와는 완전 다른 삶을 사는, 깨발랄한 삶을 사는 내가 나오는 꿈. 까르르르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하면서 20대를 마음껏 누리는 내가 보였으면 좋겠어.
실제 20대의 나는 경직된 삶을 살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최대한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다 보니 점점 움츠러들었다. 지출이 커질 것 같은 약속은 피하고 집에 머무르기를 선택했고, 여행은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언젠가 시간을 거슬러 가서 되돌리고 싶은 일이 있냐는 질문에는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었는데, 꿈이라는 단어에서 좀 더 생각에 틈을 줄 수 있어서였는지 그 시절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꿈을 설명하자 곧바로 남편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훈: 나는 모험을 하는 꿈. 빙하를 걷는다거나, 빙하에 있는 크레바스를 아슬아슬하게 건넌다거나, 위험한 산을 오른다거나, 아니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폭풍우를 만나는 꿈. 아, 우주선을 타고 있는 꿈도 좋겠네.
화: 정말 많네. 근데 전부 너무 힘든 꿈인데?
훈: 꿈이잖아.
왜 이런 모험을 하는 꿈을 꾸고 싶은지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그냥,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이라고. 그래서 이 질문은 어떻게 생각이 난 것인지 물었다. 다행히 그 대답에는 간단하게나마 설명이 있었다. 질문을 하나 해보고 싶은데 떠오르질 않다가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질문들을 생각해 보니, ‘뭐뭐 한다면’ 하는 식의 질문들이 많았던 것 같아서, 그런 식으로 만들어본 것이라고.
짧았던 남편의 대답처럼 이날의 대화도 짧았다. 나는 아쉬움이 남았고, 남편은 쏘쿨했다. 남편에게 내가 꾸고 싶은 꿈에 대한 더 깊은 질문을 받고 싶었지만 그냥 두었다. 그냥 둔 이유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추측해 보자면, 단순히 주변이 시끄러워졌거나 해서 깊은 이야기를 이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두 눈을 껌뻑이며 뭐 더 궁금한 건 없냐는 의미를 담은 귀여운 듯 애절한 표정을 짓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거나, 남편이 내 마음을 읽어내는 실력이 급성장해서 너무 당연하게 물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추측은, 남편도 애쓰고 있음을 알았기에, 기대치를 조절해야 한다는 걸 내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만 질문 시간에 적응하고 능숙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못지않게 적응하고 느긋해지는 훈련이 필요했다. 이 시간을 오래도록 함께 누리기 원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