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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Mar 10. 2022

꿈틀리 인생학교 이야기, 1

3박 4일간의 예비학교

3월 1일, 자그마치 세 시간에 걸친 꿈틀리 인생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꿈틀리는 가능한 대부분의 행사를 휴일에 진행한다. 멀리서 강화도까지 오는 가족의 편의를 위함인 듯하다.) 


집을 떠난다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컸던 터라 아이도 우리 부부도 이 날을 무척 기다렸다. 그랬던 만큼 서둘러 출발했던 우리는 한 시간 반의 여유를 두고 강화도에 도착해 준비해 온 도시락을 차에서 나눠먹고 느긋하게 학교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적지 않은 가족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2시가 되기 전부터 가족들이 모여 열 체크를 하고, 아이의 별명이 쓰여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이들 각자 준비해 온 별명과 그 별명의 의미 소개가 메인 스케줄이었던 입학식은 학부모 모임까지 5시에 끝이 났다. 그럼에도 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교장선생님의 긴 연설이 주가 되는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입학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학교만 다녀오면 선생님의 권위에 눌리던 피곤함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다섯 시를 넘겨 학부모 모임을 마무리하고 안이를 다시 만나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가려는데, 근 2년간 보지 못했던 아이의 표정을 보고 말았다. 걱정 말라며 웃고는 있지만 숨길 수 없는 긴장감. 

'아, 이제 시작이구나.' 

덤덤한 척 손을 흔들어주며 학교를 벗어났지만 강화도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촉촉한 감정이 훅 끼쳐왔다. 잘 내색하지 않던 남편에게도. 

안이도 우리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적응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각자 억지로 마음을 끌어당기지 않아야겠지. 평소 자신을 "적응력 갑"이라고 하는 아이였지만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앞으로 만나며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지 언젠가 알게 되겠지.

집으로 오는 내내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엊저녁에 안이와 나눈 대화가 생각나면서 스스로 칭찬하며 감정을 다독였다.

"안이가 데리러 오라면 엄마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올게!" 이 말을 해뒀다는 것이 아이 보다 오히려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어지간해선 아프단 소리도 힘들단 소리도 안 하는 아이였기에, 든든한 보호처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입학식 중에 오연호 이사장님이 그랬다. "꿈틀리 문제 많습니다. 그 사회가 가진 문제가 동일하게 존재하고, 그것을 함께 해결해가는 법을 배우는 게 학교라고 합니다."

그래, 1년 간 아무 문제없이 학교를 마무리하기를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갈등 속에서 부대끼기도 하고, 화해하며 함께 웃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이렇게 3박 4일의 예비학교를 끝내고 만난 아이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2박 3일간 함께 있으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었다.

자기가 막내인데 또래도 없어서 처음엔 많이 당황했었다는 얘기. 그래서 자기보다 한두 살 많은 친구들 별명을 부르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름 어색하지 않게 부르는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냈다는 얘기.

(작곡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작곡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는 얘기.

3월 한 달 화장실 청소 당번이어서 화장실 청소법을 배웠는데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 하지만 1년 후에 집에 오면 우리 집 화장실 청소는 진짜 잘할 수 있겠다는 (놀라운) 얘기.

식사 당번도 했는데 엄청 피곤했지만, 거기에 비하면 설거지는 집에서 했던거라 그런지 설거지 당번은 너무 쉽더라는 얘기...


조잘조잘해주는 얘기들 중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니까 내가 생각보다 듣는 포지션이더라고. 처음에는 사람들의 높은 텐션에 맞춰야 하나 싶어서 좀 따라가려고 했다가, 내가 편한 대로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고 아직 듣는 포지션이야. 그게 편해. 1년 같이 지내려면."


그리고, "기대돼."




참고로, 꿈틀리 인생학교 입학 준비물 중에 "별명"이 있다. 

-------- (공지 내용 중)-------

3. 별명 사용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모두 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별명 사용의 의미
① 다함께 별명을 사용하여 선생님과 학생, 학생과 학생 간에 친밀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② 가치관과 삶의 방향 등 자신만의 의미를 담아 스스로 불리고 싶은 ‘내 인생의 두 번째 이름’을 정하고, 그 이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집니다.

▢ 별명 짓기
 다른 사람들에게 불리고 싶은 1~3자의 별명을 지어오세요. (예시 : 밥, 두루, 별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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