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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Mar 17. 2022

꿈틀리 인생학교 이야기, 2

입학 전 준비: 별명

꿈틀리에서는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별명을 사용한다.

대부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갭이어로 오는 아이들이지만, 고1을 다니다가 오는 아이도 있고 안이처럼 중2 나이에 검정고시를 끝내고 입학도 가능하다. 그래서 한두 살 나이 차이가 생기는데, 꿈틀리에서는 언니, 형, 동생과 같은 호칭이 없이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위계를 없애기 위한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선생님도 별명+쌤으로 부른다.


그래서 꿈틀리인생학교 입학 준비물 목록에 "별명"이 있다. 


-------- (공지 내용 중)

3. 별명 사용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모두 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별명 사용의 의미
  ① 다함께 별명을 사용하여 선생님과 학생, 학생과 학생 간에 친밀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② 가치관과 삶의 방향 등 자신만의 의미를 담아 스스로 불리고 싶은 ‘내 인생의 두 번째 이름’을 정하고, 그 이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집니다.

▢ 별명 짓기
  다른 사람들에게 불리고 싶은 1~3자의 별명을 지어오세요. (예시 : 밥, 두루, 별헤다)


입학식에서 7기 아이들의 별명 소개를 들으며, 벌써부터 뿜어지는 각자의 개성들이 보여 좋았다. 이름 소개와는 또 다르게 별명을 소개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소개를 듣는 이들에게서는 '아~ 그렇구나!' 하는 미소 띤 얼굴이 보였다.




입학하기 하루 전, 산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동네를 크게 한 바퀴 걸었다. 

"함께 걷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늘 머무는 공간에서 나와 시원한 공기를 쐬면 유독 대화가 잘 된다는 것이다. 그날도 걸으며 머릿속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고민을 나누었다. 최근 들어 올라온 이상한 열등감에 대해서 늘어놓았고, 아이는 잠잠히 들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내 이야기를 끝냈을 무렵에는 엄마가 배려하느라 그런 거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리곤 요즘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엄마와 달리 고민을 깊게 하는 편은 아니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편이었던 아이는 요즘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고. 그래서 본인을 '형용사 + ㅇㅇ주의자"로 이것저것 며칠 만들어보다가 맘에 드는 걸 결국 하나 선택했다고 했다. 


"진중한 쾌락주의자".

쾌락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는 것 같지만 쾌락이라는 단어는 좋은 단어인 것 같다고. 하지만 자기는 진중하게 쾌락을 선택하는 편인 것 같아서 이렇게 결정되었단다. 이어서 엄마도 하나 만들자고 제안해오면서 조건은 반드시 앞뒤 단어가 반어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형용사는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겁 많은". 그리고 ㅇㅇ주의자 부분은 아이에게 넘겼다. 엄마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진중하게' 고민하더니 세 가지의 단어가 불렸고,  그중에 쏙 맘에 드는 게 포함되어 있어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그래서 "겁 많은 모험가"로 만들어졌다. 겁은 많은데, 해야 할 모험에는 용기를 내는 삶을 살아오기도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 이 별명이 맘에 쏙 들었다.

우리는 내친김에 아빠의 별명까지 만들어주기로 했지만, 우스운 별명만 떠올라서 결국 포기하고, 다음 날 입학식을 위해 강화도로 가는 차 안에서 결국 완성이 되었다. "묵직한 수다쟁이". 무게가 좀 나가기도 하고 (웃음) 수다를 무척 좋아하는데 주제에 대해 깊이 들어가기를 좋아해서 그리 결정되었다. 


아이는 올해 두 개의 별명이 동시에 생기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남편과 내게도 별명이 생기기 쉽지 않은 이 나이에 재미난 별명이 생기게 되었고.


친구들과의 소풍에서 아이가 찍어서 보내온 사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생각하며 꿈틀리에서 불릴 별명을 짓듯이, 그곳에서의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지겠구나 싶다. 홈스쿨 2년 차이던 지난 1년간, 혼자서 두세 시간 걸으며 K-pop에 대한 관심만 깊어진 줄 알았더니, 자신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구나 싶어 고마웠고 아이가 새로웠다.


자신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곁의 친구도 들여다보는 시간 되렴. 


짬짬이 자신의 생활을 알려주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이를 신뢰하게 되고, 더불어 꿈틀리를 신뢰하게 된다. 모쪼록 학교 안의 상황만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 나라도, 이 세상도 안정적인 시간들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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