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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성 Jan 17. 2023

수선화

#1

내가 평생 좋아했던 꽃을 하나만 얘기하라면 나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수선화라고 할 거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마늘 모양으로 생긴 알뿌리는 들고 다니기가 편해서 몇 번이나 이사를 하는 동안 이 꽃을 어떻게 옮길지로 걱정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의 정원으로 보낼 수도 있었지.


정원에서 수선화가 살아가는 모습은 참 영리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해. 겨울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혼자 올라와 꽃을 피우고 덕분에 일찍 깨어난 벌들은 수선화 같은 알뿌리 식물들의 꿀을 얻어 봄을 시작할 수 있지.


아직 주변에 있는 식물들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햇빛도 물도 혼자 독차지하며 그다음 봄에 꽃을 피울 양분도 미리 저장한단다. 그러다가 다른 식물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면 서서히 잎을 정리하며 다시 땅속으로 숨어버려. 계절의 빈자리들을 참 잘 알고 있는 꽃이야.


그러기 위해서 수선화는 그 모진 겨울 동안 땅속에서 꽃을 준비한단다. 그 춥고 어두운 땅속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겨울이 끝나간다고 느끼는 그때가 오면 정말 망설임 없이 땅 위로 수선화의 꽃대가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어.


만약 수선화가 살아가는 모습 중 어느 한 장면만 보여줄 수 있다면 나는 수선화의 싹이 올라오는 그 순간을 보여주고 싶어.


나한테는 그때부터가 봄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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