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쉬던 어느 날-졸업 3주 후 군대에 갔었다- 아버지와 차를 타고 가다 거대한 조선소를 지나치게 됐었다.
거대한 도크을 보자마자 그 어마어마한 위용에 감탄하며 제대 후엔 꼭 조선소에서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막연하게 엔지니어를 꿈꿔왔던 난 전역 후 망설임 없이 조선업 쪽으로 이력서를 뿌려대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심리학과를 졸업한 정체불명의 유학생을 받아주는 조선 회사는 없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고 거듭되는 거절에 입사 지원서가 해양플랜트 쪽으로 틀어지기 시작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건설 업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건물도 크니까 괜찮아. 무조건 크면 돼.'
정말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며 지원서를 뿌려대던 정성이나마 갸륵했던지 서울에 위치한 어느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해외공사를 전문으로 하던 그 회사에선 마침 영어를 잘하는 직원이 급하게 필요했었는데 이제 막 군대에서 나와 씩씩했던 모습이 사장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결국 다른 직원들의 반대를 넘어 기술영업부에 배정받았던 게 내가 건설업계로 들어갔던 첫걸음이었다.
그 후로 약 5년 간 회사에서 먹고살듯 지내며 별의 별일 다 겪다가 퇴사할 때 즈음엔 엔지니어링 부서에서 혼자 플랜트 현장 3개를 맡고 있었는데, 설계와 실행 견적서, 계약, 실행까지도 직접 진행했었던 프로젝트들이었다.
간신히 잡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좋은 사람들 밑에서 착실하게 배운 덕에 국내 최대 건설사에서 왔던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맡고 있던 일들을 회사에서 인수인계받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해보기도 하고, 외국계 회사들이 내밀었던 좋은 조건들에 대한 답변도 끝내 주지 못한 채 회사 생활을 정리했었다.
현장 엔지니어는 내가 오랫동안 동경했던 일이었고 퇴사할 때도 사장님께 일이 싫어서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었다.
퇴사 후 그런 소문이 퍼졌다고 전 동료를 통해 들었다.
"그 인간 농사짓는다고 강원도 갔다더라."
사람들은 분명히 사실이긴 사실인 그 말을 '원양어선 탔다더라' 라던가 '진리를 찾기 위해 티베트로 떠났다더라' 정도의 수준으로 알아들었을 게 뻔했는데 두 손을 다 묶인 채로 뺨을 맞는 것처럼 억울했다.
회사 폰을 반납하고 나오는 바람에 내겐 일체의 항변이나 보충설명의 기회가 없었다.
현장 기술자들
현장일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가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과 변수가 없는 방식을 꾸준히 쌓아 완성해나간다는 점이었다.
대규모 현장의 일은 정말 깔끔해서 일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도면 위에 다 나와있고,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작업 인원수 그리고 연장근무 수당이 얼마인지까지 정확하게 정해지고 지켜진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 모두 작업을 마무리하고 퇴근할 준비를 시작한다.)
자연에 내맡기고 수확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내년을 걱정해야 하는 농사와 정반대다.
문외한의 눈에는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다 같아 보이지만 현장에는 정말 별의별 직종들이 다 있고 그중에는 나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한 직업들이 즐비하다.
내가 담당했던 파트는 그 수많은 갈래 중 '감시'와 '제어'쪽이었다.
이 파트는 전기 쪽에서도 약전에 들어가고, 음향설비나 출입통제설비, 감시카메라, 화재 감시와 소화설비 등의 각 공정들이 하나의 통합 시스템에 묶이고 시공 방식도 플랜트냐 빌딩이냐에 따라 각 파트 별 전문 엔지니어들과 프로그래머들이 따로 있다.
같은 현장을 가도 누구는 거대한 철관을 메고 다니고 누구는 작은 손 공구 들을, 누구는 아나콘다 같은 케이블 묶음을, 심지어 누군가는 노트북이나 도면 몇 장만 딸랑딸랑 들고 다닌다.
현장에서 직접 작업하는 직업 종류만 해도 그렇게 많은데 건설 자체와 관련된 부동산, 공구상점, 인력사무소, 인부 식당, 중기계 정비소 등 2차적 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까지 합치면 건설경기가 안 좋을 때마다 나라가 왜 휘청거리는지 알 수 있다.
시골에도 건설 일이 있을까?
군 전체 인구가 서울의 2개 동 정도밖에 안 되는 이 동네-한우가 더 많다-에 과연 건설 일이 있을지,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집이라는 걸 짓고 사는 이상 건설과 건축에 관련된 일거리는 계속 쏟아져 나온다.
사실 우리나라의 건축 방식-특히 콘크리트-은 수명이 그리 긴 편은 아닌데 귀촌 인원이 늘어나며 생기는 소규모 목조주택마저 하자가 많아 보수 작업만 하고 돌아다녀도 1년 내내 바쁠 것 같다.
콘크리트 건물에 하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를 꼽으라면 당연히 콘크리트 자체가 구조재로써의 역할만 있을 뿐 단열 효과도 전혀 없어서 외부 마감과 내부 인테리어가 중요한데 시공 당시의 시공자의 실력과 거주민의 관리 능력에 따라 수명이 정말 짧아질 수 있다.
경량식 목조주택은 DIY를 좋아하는 북미식 스타일인데 자재들이 가벼워 혼자 시공이 가능하다는 점만 빼면 자재 하나하나가 비싼 편이고 목재들을 이해하고 꼼꼼하게 시공하지 않으면 완성도가 아주 떨어지기 때문에 자재 성격만 다를 뿐 결국 시공비가 콘크리트보다 더 들어가면 더 들어가지 싸다고 할 순 없다.
경량식이라는 이름에 속아 싸게 대충 지으면 당연히 하자로 이어져서, 사장님들이 같이 일 좀 하자고 불러서 가보면(날 '동생'이라고들 부르신다) 겉모양만 그럴싸하고 속은 엉망진창인 건축물들이 많다.
멀쩡한 집도 자재 수명이 다하면 다시 공사에 들어가야 하니 빠르나 늦으나 일거리는 생긴다.
"혹시 내일 시간 돼?"
본업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애매해서 꾸준히 일하지 못하는 인원인 데다, 베테랑도 많고 동네 전체가 선후배 사이로 이루어져 있는 상황에서 나한테 일하자는 전화가 온다면 이유는 몇 가지 안된다.
- 기존 인원이 펑크 났다.
- 오전이나 오후 잠깐 반쪽짜리 일이다.
- 무거운 자재가 들어온다.
-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 굉장히 지루한 포지션 하나가 비어있다.
- 머리 굴려 일을 정리해나갈 사람이 필요하다.
- 키 큰 사람이 필요하다.
- 오랜만에 얼굴이나 좀 보자.
일이 많이 몰릴 때는 '이러다 직원 되겠다' 싶을 정도로 며칠 연달아 끌려다닌다.
핑계 겸 정말 다급하기도 해서 다음 날부터는 농장 일을 하러 가야 한다고 하면 완전히 까먹고 있다가 "아 맞다. 너 농장 한다 그랬지?"하고 그제야 놓아주신다.
그러다 숲 속에서 혼자 며칠 일하는 게 지루해져 다른 현장 갔다가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대부분 점심때 마주친다) "너 이 자식 농장일 하러 간다며!" 하고 양치기 소년으로 몰려 또 며칠 붙잡힌 채 끌려다니곤 한다.
시간 맞아서 같이 일하다 보면 동네 사람들도 조금씩 알아가고 도시에는 없는 특이한 일들이 많아 새로 배우는 일들도 많아서 재밌다.
특히 일이 끝나고 남는 자재들을 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나중에 따로 사려면 하나같이 부담되는 자재들이라 일단 받아서 쟁여둔다.
건너 건너 소개로 알게 된 분들도 많고 일할 때 필요한 말 외에는 잘 안 하게 되다 보니 내가 농장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도 많다.
사실 보기보다 별로 안 힘들고 퇴근시간이 칼 같이 끝나 주는 덕에 농장 일정에 의외로 지장 안 받는 일이다.
네시만 넘어가면 다들 쓰던 연장과 업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오늘 다 못하면 내일 하자'라는 오래된 현장 마인드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차피 일이라는 게-
누구나 기술만 있다면 칼퇴근 보장받으며 대기업 다니는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 현장일인데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우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정도의 숙련된 전업 기술자도 아니고, 안경알이 커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집에서 책 읽다가 현장 구경하러 나온 것 같은 사람 취급을 항상 받아야 한다.
이 바닥도 본업 아닌 사람에게 그런 대우 해 줄 만큼 빈자리가 많진 않다.
나이가 어린 편이라 짬에서 밀리는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책임질만한 일을 맡기지도 않고 실제로 내가 해놓은 이상으로 칭찬받기도 해서 유리한 점은 많다.
이 동네에서 현장에 가면 보통 나 다음으로 어린 사람이 나와 10년 이상 차이나는 정도니, 내가 갑자기 미쳐서 '나도 나이가 서른인데! 어! 내가 우리 집에선 가장인데! 나도 한때는! 어!' 이딴 발작만 안 일으키면 아재들 사이에서 조용히 며칠 일하고 받는 돈에 용돈도 얹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어차피 일이라는 게 시간 쓰고 돈 받자고 하는 건데 정해진 시간 동안 할당량 채우고 잘 벌어가면 되는 거라 정해진 규칙과 할 일만 신경 쓰면 된다.
노동 강도
흔히 건설 현장 일은 고될 거라고 인식되는데 물론 그런 일도 있고 아닌 일들도 많다.
'막일 한번 갔다 와서 다음날 온몸에 파스 붙이고 드러누웠다'라고 흔히 들리는 무용담은 정말 운동부족이었던 사람이었던 사람이 어쩌다 단순노동 한번 갔다 온 후에 생기는 일이다.
내가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혼자 건물 다 짓고 온 것처럼 앓는 소리를 하지만 실상 현장에서는 자재를 트럭에서 내릴 때 빼곤 그리 힘쓸 일도 없고 내가 현장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 중에 제일 무거운 게 5m까지 잴 수 있는 2천 원짜리 줄자다.
도면과 현장 서류 수정으로 책상 앞에만 앉아있다 오는 날은 슬리퍼 신고 올 걸 그랬다며 후회한다.
장비들은 카트에 싣고 다니고 그날 작업지시받은 것들을 체크한 후 두 번의 간식시간과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시간 배분을 한 다음 움직이면 된다.
물론 자잘하게 긁히고 까지는 일은 많지만 안전수칙은 지키라고 만들어져 있는 거니 지키면서 움직이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일은 없다.
현장에선 그런 규칙들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꼭 하자 만들고 혼자 다친다.
같이 일하기 피곤한 사람들
혼자 하는 일이면 정해진 일이지만 사람이 하나만 더 생기면 그때부턴 사람일이 되는데 누구랑 일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작업은 물론 길어지면 그 현장 들어가는 내내 피곤해질 수 있다.
각자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겠지만 철저하게 같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같이 일하기 정말 피곤한 사람들이 딱 정해져 있다.
- 말 많은 사람
너무 조용해도 재미없지만 하루 종일 같이 붙어있어야 하는 입장에서 말 많으면 큰일 난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말 많다고 느낄 정도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닌 수준인데 자꾸 말을 하다 보면 결국 집중력도 떨어져서 두 번 일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리고 처음부터 말 많은 사람들 특징이 대개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려고 그런 식으로 혼란을 주는 거라 일처리가 매끈하지 못하다.
- 너무 잘해주는 사람
잘해줘도 지랄이냐고 할 수도 있는데 경험 상 현장에서 늘 좋은 얘길 하고 잘해주기만 하는 사람들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상한 보상심리 같은 게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얼굴 확 바뀌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동안 잘해줬으니까'라는 개념인지는 모르겠는데 보통 사장들 중에는 친절하고 느긋한 사장들이 돈도 느긋하게 보내준다.
2개월 만에 입금된 적이 있는데 까먹고 있다가 목돈이 들어오는 바람에 경찰에 이상한 돈이 들어왔다고 신고했었다.
친절도 지나치면 이유가 있는 법이다.
- 투덜거리는 사람
금액이 안 맞다느니 너무 힘들다느니 하루 종일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얘기 끝나고 온 마당인 데다 정말 안 맞으면 집에 가면 되는데 가는 경우를 못 봤다.
꼭 이런 사람들이 항상 뒤로 한걸음 물러서 있다.
- 예술병 걸린 사람
여러 기술들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는 기술은 가장 원론적이고 확실한 몇 가지만 들어가는데 간혹 기술을 넘어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자신만의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묵묵히 스스로의 길을 걷는다.
집에서 혼자 걸으면 되는데 굳이 그걸 돈 받고 나온 현장에서 걷고 싶어 한다.
혼자 그러고 있으면 그냥 못 본척하고 지나가면 되지만 업무가 겹치면 뒤에서 마취총 같은 걸로 기절시키고 싶다.
- 힘이 약한 사람
목재 작업이던 전기작업이던 석재 작업이던 힘이 안 따라주면 뭘 해도 느리다.
천하장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작업 속도와 돈이 직결되는 바닥이니 만큼 힘이 약하면 현장에서 대놓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반대로 힘이 좋으면 뭘 해도 환영받는다.
안전수칙 때문에 뛰어다니지 않고도 남들보다 빨리 다니려면 힘과 체력이 좋아야 한다.
- 천천히 하자며 자주 쉬는 사람
체력과 힘이 약한 사람이 언어능력을 이상한 쪽으로 갖추면 대개 이 길로 빠진다.
힘으로 할 일이 아닌 것 같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쉬엄쉬엄 하자고 자꾸 보채는 건 힘드니까 일 하지 말자는 얘기랑 비슷하다.
답답해서 혼자 일하면 자기를 내버려 두고 간다고 생각해서인지 화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 마취총이 시급하다.
농사보단 쉬운 일
현장 일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농사가 훨씬 더 힘들다는 얘길 해주고 싶다.
주변에서 농업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농사만 가지고는 수입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건축기술 몇 가지나 중장비들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농장을 꾸려나가신다.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모이면 하나같이 농사가 더 힘들다고 하고 나도 사실 농장이 아니라 하던 일만 했다면 훨씬 더 풍족하게 저녁 있는 삶을 누리며 살았다.
위험성으로 따지면 우리 아버지께선 과수원 농사짓다 농기계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위험한 것도 농사가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힘들긴 더럽게 힘든데 그만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농업을 직업이 아니라 '상태'라고 생각하고 거리를 살짝 둬보면 정말 많은 게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