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저씨들은 꼭 술에 취하면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꺼내시는데 어느 겨울엔가 농장주 모임 회식자리에서 한 아저씨는 짐짓 세상의 비밀 이야기를 꺼내듯 근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세 가지가 무엇이냐?!"
나는 그때 의자 위로 올라가 있는 그 아저씨가 굉장히 약장수 같아 보였다.
"남을 가르치는 일! 남에게 월급을 주는 일! 그리고 마누라들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어!"
회식자리에 참석하셨던 아줌마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의자에서 내려온 아저씨는 한건 해낸 약장수의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술자리 분위기 속에 스며들었다.
왜 그때 그 아저씨가 그 얘길 했는지 난 아직도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남을 가르치는 일
남에게 월급을 줄 능력은 아직 못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생에 마누라 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우연히 기회가 닿아 남을 가르치는 일은 하고 있다.
외골수 같은 면이 있는 난 내 머릿속 이야기들을 남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참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남을 가르치는 일은 도무지 정답을 찾지 못하고 혼자 머리를 감싸 쥘 때가 많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을 100으로 잡았을 때 내 입 밖으로 정리돼서 나올 수 있는 양은 그중에서 60% 남짓, 그나마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양은 그 60%의 60% 정도라고 생각하면 과연 마지막에 듣는 사람이 가져가는 건 처음 100에서 36% 밖에 안된다는 얘긴데 증발해버린 64%는 나중에 엉뚱한 걸로 채워져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결과물로 다가오기도 한다.
수업이나 강의가 끝나고 피드백을 받을 때면 오늘따라 유독 구렸다고 생각한 수업이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수업이었다는 얘길 듣기도 하고 나는 이거라고 확신하고 자신했던 수업이 책상의 절반을 꿈나라로 보내버린 적도 있다.
강사로서의 능력에는 내용이나 화술도 중요하고 눈치도, 하다못해 외모도 중요할 텐데 남을 가르치러 문 밖을 나서는 매 순간이 참 기적같이 느껴지곤 한다.
영어강사
꽃 심으러 간답시고 농장에서 개들과 노닥거리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 문자 보내 놓을 테니까 한번 전화해봐."
읍내에 있는 학원에서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칠 영어강사를 구하고 있었는데 학원 원장들끼리 소식이 돌았던지 아내는 내게 학원 연락처와 주소를 보내줬다.
문자를 본 난 통나무 창고 안에 누워 한 시간이 넘도록 고민했다.
차라리 초등학생이었다면 흔쾌히 받아들였겠지만 초등학교 이후의 과정을 해외에서 보낸 덕에 한국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은 내가 인생에서 만나 대화해본 적이 없는 인종이었다.
가뜩이나 학창 시절 내내 기행을 저지르며 괴짜로 보냈었던 내가 그 나이 때의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을는지, 의외로 병적일만큼 원칙주의자인 내가 거부감이 들진 않을지, 꾸준히 나가야 하는 일을 농장 일과 병행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하면서 창고 벽을 어찌나 툭툭 차댔으면 통나무 벽 한쪽이 반들반들해졌다.
결국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하는 마음이 이겼다.
"안녕 얘들아."
첫날부터 지금까지도 사춘기 소년, 소녀들 앞에 서는 건 부담스럽다.
농장일에 치여 바쁘게 수업에 들어온 날이면 가르치면서도 온통 머릿속이 포크레인과 모종들로 파티를 벌이고 있고 현장에 급히 들렀다 온 날이면 몸에 콘크리트 가루가 묻어있진 않은지, 수염은 언제 깎았나 수업 중에 문득 걱정된다.
나 자신도 걱정되는 판국에 영어권 문화에 대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로 하여금 영어를 이해시키는 것도 서로 고된 일이다.
언어는 본디 특정 문화 속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녹아있는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개인과 단체의 범위, 시간 개념, 사고방식과 표현방식, 문화적 차이, 말의 순서 등 하나의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세계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수능에 나오는 영어 문제들은 평균 20세 정도의 언어와 사고능력이 있어야 완전히 이해하고 풀 수 있는 난이도인데 학생들에게 언어적인 부분도 가르쳐야 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과 어떤 통념적인 기준들까지 설명시키려다 보면 시간이 참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런 식의 문제에서는 대개 이런 게 정답이고-' 같은 편법들이 왜 등장하는지 충분히 이해 가면서도 미루다 보면 결국에는 한 번에 뭉쳐서 돌아올게 무서워 하나씩 순서대로 가르치다 보니 시간에 쫓길 때가 많다.
어린 나이에 공부가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지 뻔히 이해 가면서도 일하러 왔으니 일하자는 생각 하나로 우거지상 짓고 있는 애들을 마주한 지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다행히 아이들의 성적은 조금씩 올랐고 어느 정도 자생력도 생긴 듯 보인다.
고등학교 시험에서 만점도 간간히 받아오는 걸 보면 학생들 스스로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괜히 내가 뿌듯하다.
언젠가 만점을 받았던 학생의 부모님께서 수확철에 감자를 한 박스 주신 적이 있는데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강원도에서는 강사 월급을 감자로 주는 거 아니냐고 놀려댄 직후라 기분이 굉장히 묘했던 기억이 있다.
귀농자 교육
전업 귀농인이 된다는 건 대단한 결정이자 자칫 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택인데 귀농자 교육 센터들 속, 수많은 기라성 같고 알토란 같은 강사 분들, 그 사이에 내가 얼렁뚱땅 껴있다.
다른 대단한 강사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내가 참 일천하다 느끼는데, 사석에서는 순전히 외모로 발탁된 거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사실 지역 내 기관에서부터 젊은 청춘 하나 굶어 죽는 일 생기지 않도록 기회를 많이 주신 덕인 것 같다.
내가 주로 맡는 교육은 원예 식물 재배와 농장 운영, 정원 조경에 관한 부분들인데 비슷한 내용들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주제에 따라 온도차가 심하게 갈린다.
정원 조경에 대한 교육은 어떤 꽃이 예쁜지, 어떤 디자인이 효과적일지, 어떤 구성이 효과적 일지만 생각하며 강의시간 내내 나 자신도 뭔가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반짝거리게 되는데 농장 운영에 대한 주제로 강의실에 들어서면 뱃속에 돌덩이가 하나 들어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꽃은 취미로 키울 때가 가장 사랑스럽다.
정원 문화는 허영과 이상 속에서 탄생한 문화로 현실과 동 떨어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데 이게 직업이 되는 순간부터는 그저 단순히 흙과 식물, 판매와 재고가 된다.
강의를 시작하려고 마이크 들고 앞을 봤을 때, 아름다운 꽃들을 만지며 하루하루를 영위할 꿈에 가득 찬 사람들이 강의실 한가득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제부터 악당이 되는 것 같은 불편한 부담감에 사로잡힌다.
농장의 운영 비용과 인건비, 매출과 자금 흐름, 조달받을 수 있는 자금과 융자들을 설명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토로를 지나 최종 수익을 계산했을 때 적히는 숫자는 내가 적으면서도 참 암담하다.
한 달에 두어 번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원예농장 사장님들의 전화를 받고 경영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하며, 당장 옆집에 사는 아저씨도 화원을 운영하다 실패한 후 다른 일을 하고 계시는데, 꽃 이야기만 나오면 학을 떼시더니 얼마 전 튤립 구근들을 선물로 드리자 경기를 일으키며 거절하시기도 하셨다.
직업적으로 꽃을 대하면 얻는 부분들도 있지만 잃는 부분들도 많은데 그중 하나가 처음에 꽃을 좋아했던 마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을 좋아할 수 있었던 건 그때가 취미였기 때문에, 현실과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농장 운영에 대한 강의가 끝나고 침통해진 분위기를 도망치듯 강의실에서 빠져나온 적이 서너 번 있는데 언젠가는 누구나 직업적으로 꽃을 대해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늘 고민한다.
꽃을 예전처럼 순수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니까.
대체 농장은 언제 운영할까?
농업 외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쭉 쓰다 보면 내가 쓰면서도 과연 나라는 인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간이 맞긴 한가 싶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항상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현장에서는 나를 팀장이나 반장이라고 불러대는데, 나는 나를 소개할 때 꽃 농장을 운영한다는 말 외에는 해본 적이 없다.
농업인으로서 꼭 흙을 파고 꽃을 심어야, 심었던 꽃을 캐고 파는 일만 해야 했다면 난 진작에 빚더미 끌어안고 구렁텅이로 떨어졌겠지만 조금 넓게 생각하기로 했다.
분필을 잡던 연장을 잡던, 모두 농장 일과의 연장이라고 생각했고 더 영민하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렇게 번 시간과 돈들은 결국 내 농장 부지에 꽃이라는 형태가 되어 기약 없이 묻혔다.
모든 일들이 나름의 성과도 있고 성취감도 있지만 내가 가장 오래 해왔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앞으로도 해나갈 자신이 있고 내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일이 무슨 일일지 생각해보면 늘 한 가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는 속담처럼, 아주 지겹도록 돌아가는 느낌은 있지만 항상 나침반은 딱 한 곳에 맞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