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이사 갈 준비를 하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이 내가 그동안 사다 쟁여놓은 책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박스들이 잔뜩 쌓여 이사비가 추가돼도 내가 내 손으로 그 박스들을 버리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항상 가족들이 고생해야 했다.
강원도로 넘어온 지 몇 년 되지 않은 지금도 이미 책장 세 개를 해치웠고 급기야 지하창고 한편을 채우기 시작했다.
농장에 1년째 짓고 있는 사무실은 내 업무 공간이 따로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반 정도의 공간은 집안을 잡아먹기 시작한 책들이 들어갈 자리이기도 하다.
지금 짓고 있는 사무실의 평수는 6평 남짓인데 만약 나중에 사무실을 확장한다면 그 이유는 분명히 책들 때문에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일 거라고 확신한다.
여기까지의 상황을 본다면 나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사람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난 보통 두께의 책 한 권을 읽는데 3일 정도 걸리는 슬로우 리더로 남은 일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 몇 권 안 되는 슬픈 사람이다.
쓸데없이 시리즈 모으는 취미까지 있어 모르긴 몰라도 몇십 년 동안 칩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지금 가지고 있는 책들도 다 못 읽은 채 생을 마감하겠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난 책을 살 거란 걸 알고 있다.
- "읽지도 않는 책을 왜 사냐?"
어릴 땐 내가 책 사들고 오면 그렇게 좋아하시고 용돈은 안 줘도 책 살 돈은 주시던 어머니는 책장이 주저앉는 일이 반복되자 짜증을 내셨다.
"그러면 소주병을 모아볼까요?"라는 사내다운 대답을 하고 돌아서는 막내아들을 보시며 어머니는 자신이 마구니를 낳았다는 사실에 절망하곤 하신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데 책이랑 담쌓고 사는 사람들보다야 많이 읽는 편이긴 하지만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좋아한다.
책장을 넘길 때의 질감이 좋다거나 종이에서 나는 향이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그냥 책이 주변에 있는 그 자체로 마음이 편해진다.
책을 살 때도 꼭 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어쩌다 책장에 낯선 책이 꽂혀있는 걸 보며 이걸 정말 내가 샀었나 당황해하기도 한다.
???????
어찌 됐건 책을 고르고 사는 행위, 서점 봉투를 들고 집에 가는 길, 택배 박스를 열고 책을 감싸고 있는 비닐을 뜯는 순간, 영수증을 확인하고 책장에 꽂거나 훑어볼 때, 읽고 있는 순간,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보는 시간, 몇 년째 같은 자리에 꽂혀 먼지가 쌓인 책을 발견할 때, 10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는 순간 등 그 모든 게 내가 책이라는 사물을 즐기는 시간이다.
만약 신중하게 한 권씩 골라 다 읽은 후 다시 새로 사야만 하는 규칙이 있었다면 내가 책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
- 같은 취미, 다른 행복
오래된 장난감, 세계 맥주, 레코드 판, 위스키처럼 내가 그런 식으로 가지고 있는 취미들이 있는데 굳이 장난감을 조립하거나 위스키를 마시지 않아도, 한 번도 안 틀어본 레코드 판마저도 내가 정말 아끼는 물건들이다.
여기까지는 조금 상식 수준의 취미 형태인 것 같고 조금 별스러운 취미는 '커피 마시기'다.
언뜻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커피를 '내린다'거나 '향을 즐긴다', '좋은 커피를 찾는다', '카페에서 한잔' 같은 느낌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마시는' 게 취미다.
내가 하루에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잔으로 따지면 하루 8잔에서 9잔인데 남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같은 양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심지어 아메리카노는 따로 또 마신다.
마시는 양이 많으니 사실 그리 비싼 품종을 쓰지는 못하는데 브라질 세하도 특유의 참기름 비슷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우면 가뜩이나 임신 중인 아내가 경기를 일으킨다.
마시는 행위 자체만을 좋아하다 보니 한잔씩 내리는 시간이 아까워 맥주잔을 쓸 때도 있는데 가끔 내가 봐도 좀 별스러운 취미 같다.
다행스러운 점은 밤에 아주 잘잔다. 놀라울 정도로.
- 꽃이라는 취미
예전과 느낌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꽃은 여전히 내 가장 잦은 취미 중 하나다.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힌 빨간색 천 원짜리를 꺼내 수선화를 사던 시절에는 아파트 베란다에 두고 꽃이 피는 걸 보며 신기해했었는데 어느덧 구근을 따로 사서 심어보기도 하고 늘려보기도 하며 즐기더니 요즘은 다시 그냥 보는 걸 좋아한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손대는 순간 일이 돼버리는 것 같고, 굳이 내가 손 안대도 잘 자라는 식물들만 키우고 있기도 하다.
심리적으로 가장 많이 변한 점은 숲이라는 큰 공간에서 매일 자연의 흐름들을 눈으로 보다 보니 내가 인간으로서 하는 행위들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키워본 꽃들도 많지만 수도 없이 죽여봤고 그때마다 속상해했었는데 요즘은 죽어가는 꽃을 지켜보는 것도 취미 중 하나다.
꼭 내가 살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고 때로는 죽기도 하지만 죽었다는 느낌보다는 더 큰 무언가로 옮겨가는 과정들이 눈에 보이니 속상해본 적이 없다.
숲 속에 내가 심은 꽃들은 내가 남긴 내 존재의 일부 같은 묘한 일체감이 있다.
아주 작은 변화도 이유가 되고 결과가 되는 모습들을 지켜볼수록 숲이라는 공간 자체가 살아 움직이며 내게 비언어적으로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가끔은 그 안에 있는 내가 너무 작은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아득해지기도 한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꼭 책이나 자료를 뒤져보지 않아도 내 꽃들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머릿속에 비어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도 한다.
글로 쓰면 길지만 실제로는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지나가는 느낌이고 찰나의 트랜스 상태처럼 숲 밖을 벗어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취미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하지만 내가 최근에 직업 외로 꽃을 즐기는 방식은 대개 이런 식이다.
- 취미는 취미니까
매 순간 꽃에 신경 써야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다 놓기만 하고 죽으면 쉬이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정말 꽃을 잘 키워내는데서 만족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는 결과야 어떻든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는 스스로를 그대로 좋아하기도 하며, 키우는 게 귀찮아 그저 생화만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를 찬양하기도 한다.
이건 맞고 이건 틀렸다고 말한다.
취미는 취미니까 취미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 취미의 사전적 의미다.
정원에서의 꽃은 미에 대한 심리적 투영이고 정원은 이상향의 구현으로 애초에 실체도 없고 사람마다 꿈꾸는 이상향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사람마다 무슨 꽃을 살지 정하는 것도, 어느 화분이 좋다는 얘기도, 무슨 흙을 쓰면 좋은지 고집하는 것도, 새로 나온 비료제품들을 써보는 것도 모두 필요한 경험이고 중간에 고집만 부리지 않는다면 어느 같은 한 점에서 시작해 결국 같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꽃을 취미로 키우는 사람이자 업으로 삼고 있는 입장으로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꽃이라는 생물을 조금 더 이해하는 동시에 좀 더 편하게 천천히, 오랫동안 좋아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