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내 키는 146cm에서 시작했었는데 갑자기 해마다 10cm씩 자라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그렇게 빠르게 자라도록 설계되진 않았던지 2년 정도가 지나자 자라는 속도에 양쪽 무릎뼈가 부서져 깁스를 하기도 했지만 키는 계속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나 갔다.
키가 175cm를 넘길 때쯤 갑자기 한국에 채식주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학교를 자주 옮기던 시절이었는데 잠깐 한국에 들어와 다음 학교를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께서는 당시 유행에 편승해 나를 채식주의 학교로 보내셨다.
당신이 아니라 나를.
지금이야 채식주의가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졌고 육식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지만 당시에는 웰빙 바람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고기를 먹는 사람은 흡사 야만인과 같은 취급을 받던 시기가 잠깐 있었다.
시대적 무지라는 건 참 무섭다
한창때의 비트코인 마냥 상승곡선을 그리던 내 키는 기숙사에서 제공하던 신선한 야채와 감자 패티가 들어간 햄(???) 버거에 의해 짓밟혀 성장률이 0에 수렴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지식이 있었더라면 성장호르몬을 합성시키는 기초 영양분인 단백질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섭취하고 다녔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냥 운동 열심히 하고 밤에 잘자면 키는 조상님이 크게 해 주시는 줄 알았다.
흔히 채식을 시작하면 성격이 온순해진다고 하는데 그건 몸에 양분이 부족해 기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성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운동을 꾸준히 했던 내 몸무게는 항상 50킬로그램 후반 대였고 키는 180을 정말 기적적으로 넘겼지만 신체에 흉터를 남겼다.
마른 멸치가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몸이 싫어 신체개조에 가까운 20대를 보내며 근육을 붙인 덕에 몸무게를 90킬로그램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비루했던 성장기 때문인지 근육이 쓰는 힘을 뼈가 버티지 못해 관절 부상이 쉽게 온다.
지렛대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길이가 길수록 힘을 감당하는 부분에 가해지는 부하는 더 많이 걸리는데 내 골격은 그 부하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굵고 단단하지 못하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슬프게도 몸이 커지자 머리도 같이 커졌고 이를 다시 보상하기 위해 몸을 더 키우는 악순환 속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은 골격이 버티지 못해 이 이상 근육을 좀처럼 키우지 못하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태다.
인간은 채식과 육식에서 모두 양분을 얻을 수 있지만 분해 능력의 부족으로 생식으로서의 채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채식주의 학교는 내게 신체 회복과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을 끊음으로써 고교 시절의 기력 자체를 앗아갔고 항상 피곤했던 나는 운동과 공부 두 가지 모두에서 만족하지 못할 결과를 냈다.
어쩌면 키가 190에 육박하는 강철 같은 몸을 가진 천재가 될 수도 있지 않았나 상상해보지만 지금의 나는 고장 난 몸을 고치기 위해 다시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또다시 고장나버린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바보가 돼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몸살이 나서 누웠을 때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몸살이 나서 누워있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그 채식주의 학교와 일상을 버티지 못하는 내 몸을 저주하다 이내 더 지친다.
사람 마음이 참 묘해서 2년 남짓 있었던 그 학교가 내 전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이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참 시의적절하게 엿 먹은 시기였다.
내 핏줄에서 그런 얼룩은 나 하나로 족하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내 자식이 채식 학교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난쟁이로 꽃이 핀 바보 튤립
튤립의 키는 일반적인 품종의 기준에서 절화와 조경 두 분야 모두를 만족하는 30cm를 기준으로 한다.
이 길이는 땅 속의 줄기를 다 빼고도 지표면 위로 올라온 길이를 말하지만 어쩐 일인지 실내에서 키우는 튤립들 중 키가 좀처럼 자라지 못하는 튤립들이 있다.
수선화 역시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같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앞서 이야기 한 내 성장기와 바보 튤립은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과정과 결과를 가진다.
튤립이 바보로 자란 이유는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러한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흔히 우리는 무엇이 부족한가에 대해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런 문제들은 복합적이고 '무엇이 부족한가'보다 '무엇이 정상인가'에 집중하는 편이 신경 써야 할 요소를 상당히 줄인다.
정상 vs 비정상
우리가 한국에서 튤립을 보는 시기의 기온은 영상 15도에서 최대 영상 30도 정도의 초봄 날씨다.
보통 집에서 튤립을 키울 때도 이 기온을 참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겠지만 애초에 이 온도는 튤립의 여러해살이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비정상'의 온도 범위다.
튤립이 원래 살아가야 하는 온도는 영상 30도보다 훨씬 낮은 온도이며 우리나라에서 영상 30도의 5월에도 야외의 튤립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땅 속이 바깥 기온보다는 훨씬 시원하기 때문이지만 한국의 햇빛은 튤립을 키우기엔 쓸데없이 강해 서시 간이 갈수록 땅속도 이내 뜨거워진다.
내가 추식구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온도에 대해 반복하는 이유는 채광과 온습도가 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후조건 중 가장 최소 단위에 해당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흔히 튤립의 성장 불균형에 대해 양분이 부족해서, 흙이 어쩌고, 구근을 뭘 어떻게 해주면 더 좋고 등등을 얘기하지만 이 모든 게 최소한의 환경이 다 갖춰지고 나서야 +@로 덧붙일 수 있는 얘기고 근본적인 문제가 잘못됐다면 그 이후에는 뭘 해도 문제다.
튤립이 가장 좋아하는 온도는 영상 15도에서 20도 이하까지다.
이 활발한 생장 시기엔 당연히 햇빛이 필요하지만 햇빛 때문에 지표면이나 화분이 달궈져 온도를 높인다면 그때부터 햇빛은 튤립 구근을 잠들게 하는 독이 되고 생장 활동이 둔해진 식물에게 다 흡수하지 못할 수분 역시 숨을 틀어막는 독이 된다.
저온처리 전 유통을 위해 튤립 구근을 보관하는 온도는 영상 23도 정도인데 이 온도면 튤립 구근의 성장을 멈추기에 충분하다는 얘기다.
만약 자신의 튤립이 바보로 자랐다면 한낮에 구근 쪽의 온도가 몇 도인지 온도를 한번 재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건 기본 조건이다.
저온처리의 진실
이 말이 언제부터 유행처럼 번져 구근 문제에 대해 마스터키처럼 쓰이고 있다.
정상적으로 자라는 튤립들은 겨울 동안 냉기라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봄에 꽃을 피울 준비로 서서히 뿌리를 뻗어 양분을 모은다.
저온처리의 개념은 양분이 준비돼있던 튤립 구근에게 강제로 냉기라는 스트레스를 가함으로써 튤립의 개화 시기를 가장 단시간으로 당기기 위한 방법으로 꽃을 생산하기 위해 튤립 구근을 '빠르게 소비'하는 절화 농장에 주로 쓰이는 방법이다.
이 작업은 통상 영상 5도에서 15주를 기준으로 진행되는데 보통 11월에 구근을 구매하고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는 가정에서까지 이 작업을 거칠 일도 없거니와 강제로 꽃피는 시기만 앞당겼을 뿐 훗날을 도모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지고 있던 양분을 끌어모아 불나방처럼 꽃 한 송이부터 피우고 장렬하게 산화할 뿐이다.
번식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목적이 꽃 한 송이만 보는 거라면 저온처리를 통해 일찍 꽃을 봐도 된다.
다만 그렇게 가까스로 빠르게 피워낸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처음부터 화분에 정상적으로 심었던 사람들 역시 꽃을 보고 상당수의 구근을 안정적으로 회수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저온처리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 더 쓸 얘기도 없다.
햇빛의 향방
'탁 트인 정남향의 어쩌고....'는 오랜 시간 동안 향을 정하는 데 있어 기준으로 자리 잡은 말이다.
하지만 정남향은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 뜨거운 공간으로 조상들은 그 정남향에 툇마루를 만들어 바람길로 썼는데 툇마루가 사라진 현대식 건물에서 사람들은 그곳에 거실(living room)을 만든 후 블라인더를 치고 살아간다.
사람도 뜨거워서 블라인더를 치는 그 실내 공간에 과연 영상 15도를 가장 좋아한다는 튤립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볕 안 드는 반지하에서도 수경재배로 꽃을 보는 사람도 봤지만 아무래도 실내 베란다에서 튤립에게 가장 적합한 방향은 서늘한 오전 공기와 함께 햇빛을 받을 수 있는 동남향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창이 정남향으로 나있는데 가끔 수경재배 중인 튤립 수분의 물이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서 바보가 자라더라고-
???: 아무튼 토분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토분으로 키우기 가장 좋은 식물은 선인장인 듯싶다.
나는 매일 물을 주는 걸 깜빡할 때가 많은데 내 생활 패턴과 토분이 만났을 때 가장 적합한 식물은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선 일주일 정도 내버려 둬도 되는 선인장이나 틸란드시아 정도밖에 없는 듯하다.
토분은 화분 자체가 물을 흡수해 물을 굉장히 빨리 말리고 장마 때 외엔 대부분 건조한 한국 기후에서는 그 정도가 더한데 흙을 구워내 성질이 암석에 가까운 토분의 특성상 한번 달궈지면 열기가 빠지지도 않는다.
튤립은 낮은 온도를 좋아하고 생장 중에는 지속적으로 수분을 필요로 한다.
토분은 그 두 가지를 방해한다.
수능 문제를 푸는 초등학생
보통의 초등학생에게 수능 문제집을 풀라고 쥐어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대강 문제를 읽어보다가 1번부터 5번까지의 답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고른다.
이 행동의 이유는 단순하다.
보통의 초등학생 수준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기본 환경이 맞춰지지 않은 상태의 튤립 구근 또한 마찬가지다.
튤립이 원하는 건 복잡하고 신박한 기술이 아니라 적절한 온도와 물, 채광이다.
튤립은 어려운 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쉬운, 말하자면 난이도의 수준이 굉장히 낮은 식물이다.
시중에 나오는 튤립 구근은 꽃 한 송이 정도는 피울 양분이 이미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저 세가지만 갖춰줘도 꽃이 피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