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지키는 동안에는 절대 살이 찔 일이 없을뿐더러 체중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까지 덤으로 생긴다.
헬스장이 아니라면 문화센터를 가도 되고 공원을 가도 된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들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하진 않는다.
말이 쉽지 하루에 30분을 갑자기 만들어낼 마음의 준비도 안돼 있고 언제 또 나태해져 빼먹을지 모르는 헬스장을 몇 개월씩 등록하려니 부담스럽다.
당장 내일 출근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언제 근육통을 부여잡고 있을 것이며 몸살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운동복도 새로 사려니 또 돈이고 3대 500을 들지 못하면 입을 자격이 없는 옷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예전엔 운동을 해보려고 헬스장에 갔었는데 바쁘다 보니까 매일 가기도 힘들었고 며칠은 재밌었다가도 결국에는 그냥 지루하고 결과도 딱히 안 나오길래 그만뒀었다.
내가 조금 덜 먹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안히 누워 TV를 보기로 했다.
갑자기 출출해진다.
야생에 머물러 있는 몸
살은 왜 찔까?
사실 생물의 진화는 너무나 더뎌서, 현대 인간의 생활이 너무나 편리해진 지금은 더 이상 먹이를 찾아 하루 종일 돌아다니지 않아도 도처에 음식이 널려있지만 동물적 본능은 음식이 있을 때 더 많이 먹도록, 그리고 그걸 몸속에 축적하도록 시킨다.
우리의 원시적인 생체기관들은 아직 몸이 더 많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에 갇혀있는데 우리의 생활은 현대의 기술이 가져다준 혜택들에게 갇혀 안락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에 더 움직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원시적인 시스템이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들의 추격이나 혹독한 대자연을 상대로 설계되어 있는 것에 반면, 우리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동기는 고작해야 예쁘고 멋있는 옷과 핏, 유명인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 의사들 특유의 완곡한 권고 정도이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계속 채워주기엔 자극이 부족하다.
실제로 오랜 시간 동안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거의 고행과 강박에 가까운 자기 관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원시적인 시스템의 기원을 이해해본다면 당연한 과정과 결과다.
야생의 기준을 생각해본다면 그들은 자신의 몸을 야생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당연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들의 일상은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의 신체는 그런 원시적인 관리를 통해서만 정상으로 유지되며 결국 정상적인 현대 생활을 더 마음껏 영위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 기술이 발전하고 아무리 좋은 약과 시술이 생겼다지만 근본적으로 원시적인 방법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은 우리의 일상 속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 갇혀버린 야생화
사람의 상황마저 이럴 지은데 식물들은 과연 어떨까?
인간은 모든 기술을 인간의 편의에 초점을 두고 발전시켜 왔음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들 투성인데 이런 인간 세상에 끌려 나온 야생화들은 자신이 가진 원시적인 부분들을 얼마나 충족받으며 살고 있을까?
최근 몇 년 간 히트했던 TV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이 집안에서 키우는 반려견들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들이 사실 간단한 원시적 욕구에 대한 충족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가정에서 키우는 식물들에게 생기는 문제점들 또한 그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과 반려견은 이동이 가능한데 반해 식물을 뿌리를 내리고 한 곳에 정착하다 보니 동물처럼 유동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식물이 사는 곳이 애초에 원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환경이던지, 깔끔하게 포기할 부분을 포기하고 취할 것만 취하던지 둘 중 하나다.
전자의 경우에는 냉난방이 잘되는 실내에서는 가능한 열대나 온대식물들을 위주로 키우고 야외에서는 기본적으로 월동 가능한 식물들을 늘리는 것이 쓸데없이 만드는 식물들의 시체를 줄인다.
후자의 경우에는 엉뚱하게 베란다에 숲을 만든다거나 사계절이 여름인 난방 시설과 공간을 만드는 등의 굉장한 비용을 치르는 선택 대신,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고 싶은 동안만 어떤 식물을 잠깐 데려다 놓고 즐기는 방법 등이 합리적이다.
이 선택의 순간에서 인간의 가장 모순적인 부분이 나온다.
비료와 다이어트 약
인간의 심리는 참 별스럽다.
원시적인 본능으로 살이 찐 자신의 모습이 싫어 먹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거식증에 걸리고,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다 되려 영양실조라는 형태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나면 본능은 다시 폭식이라는 거울의 뒷면으로 돌아온다.
이것 때문에 심리 치료와 내과 치료까지 받게 되는데 해결책은 너무 간단하게도 하루 30분의 운동이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원시적인 행동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이 있는지 운동보다는 손쉬운 식이요법이나 효과 좋은 다이어트 약을 더 흔히 찾는다.
그리고 실제 결과물보다 '자신이 적은 노력만으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내지는 '하고 있다"같은 느낌 자체에 만족한다.
누구는 호박즙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네, 누구는 고기 다이어트, 누구는 커피 다이어트 등등의 이야기들은 몇 년째 매일같이 헬스장에서 운동으로 스스로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잠시 할 말을 잃게 한다.
시간이 지난 후 실제로 사람의 신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운동뿐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결국 운동은 알면서도 실행에는 옮기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비료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가드닝 꿀팁들은 체중 관리를 하는 데 있어서의 간단한 식이요법과 다이어트 약이다.
인간 손에 길러지고 있는 식물에게 필요한 건 전후 사정없이 단편적으로 흘러들어온 정보나 꿀팁, 정확히 어디에 어떤 식으로 필요한지 모르는 비료가 아니라 식물과 환경이 가진 원시적인 정보에 대한 이해다.
땜질 식의 처방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그때마다 근본 없는 또 다른 땜질이 더해지면 나중엔 결국 엉망이 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처음부터 근본적인 해결을 해나가야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다.
상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영어에서 운동은 build로 표현하고 다이어트는 lose로 표현한다.
자신의 정원이 단발성인지 지속성인지, 그중에서 만약 오래도록 남을 정원을 꿈꾼다면, 자신이 내리려는 선택이 운동인지 다이어트 약인지 한번 의심해보면 선택의 폭이 명료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