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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의 며칠
여름
by
조민성
Jun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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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나서던 걸음을 틀어 일정에 없이 숲에 갔다.
다른 일이 있었고 걸러도 좋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지만
괜히
그런 아침이었다.
교과목 중 바른생활이 있던 꼬맹이 시절에 하루 용돈이었던 200원으로 병아리를 가끔
사곤 했었다.
뒷
베란다에서
삑삑거리던 소리가 신경 쓰여 부모님께서 출근하신 후 몰래 등굣길에서 돌아와 병아리를
지켜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학교는 매일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교문 앞에서 병아리 할머니를 항상 만날 수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개들을 태우고 숲으로 가면서 그날의 기억이 잠깐 떠올랐었다.
이 시기의 숲은 결실이 없는 시기다.
여름의 숲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자신 안의 모든 것을 분해하고 집어삼키기만 하지 내게 무엇 하나 내어주지 않는다.
가을이나 되어야 열매가
맺히거나 구근을 캐낼 수 있고 지금의 숲은 온통 자신이 성장하는 데에만 관심 있다.
맘 같아선 가을까지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나 오고 싶지만
여름의
숲이 집어삼키는 것들 중엔 내가 애써 잘라놓은 통나무들과 내가 짓다만 사무실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만으론 부족한지 숲 한편에 보관하고 있는 내 연장들에도 쉬이 녹이 슬며 날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비를 맞은 목재를 몇 개 뒤집으니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곳에서 청개구리가 나왔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잡아봤던지 어디로 뛰어서 도망갈지 훤히 꿰고 잡아챘다.
굵은 통나무를 하나 집어 올려 다듬기 시작했다.
굵은 통나무를
다듬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다.
그리고 생각의 흔적들은 대부분 통나무 표면에 실수라는 형태로 남는다.
세상에는 딴생각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리 많진 않은 것 같다.
뭔가 홀가분해질 때까지 당분간
며칠 잡고
사무실을 마저 짓기로 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아내에게 나름의 결정을 웅얼거렸더니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줬다.
꼭 부처가 절에 가야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그 날부터 며칠을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숲 속에 있었다.
모처럼 맑은 밤하늘이 이어졌었지만 기력이 빠져있을
때라 별이 잘 보이진 않았다.
달은 가까이
당겨
서 보면 참 못생겼다.
종일 일하다 보면 개들이 안 보일 때가 두어 번 있는데 중간에 어딜 갔다 오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따금씩 자기들끼리 길을 따라 산책하고 있는 걸 보기도 하고 계곡에서 놀고 있는 게 보일 때도 있다.
보통 때는 시원한 곳을 찾아 사무실 바닥 아래에 숨어있다.
다행히 이제 벽이 제법 높아져 개들도 나도
한낮의 더위를 피할 정도는 되었다.
처음처럼 아무 데나 붙잡고 넘어 다니기는 힘들다.
벽을 넘어다니다 미끄러져 떨어진 후
그제야 문이라는 걸 만들어보게 됐다.
자투리 통나무들을 모아뒀더니 이런 곳에라도 쓸 수 있었다.
혼자
되새길 겸 실수로 잘못 깎았던 부분들이 그대로 보이게 맞춰 넣었다.
산속에는 밤이 이상하게 찾아온다.
방금 전까진 밝았는데 어느 순간 빛이라곤 온데간데없이 캄캄해진다.
병아리를 하염없이
보고 있던 내가 결국에는 학교에 갔었듯 자연인 놀이도 며칠 후엔 끝을 맺었다.
숲에 무방비로 오래 있다 보면 숲에 있는 모든 생물들이 날 갉아먹기 시작한다.
옻이 오른 목덜미를 연신 긁어대며 한동안 자리를 비울 채비를 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다음 통나무들을 미리 올려놨다.
무겁고 올리기 힘든
일은 미리 해놔야 다음에 핑계가 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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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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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야생화를 가꾸고 있습니다. 5.6헥타르의 숲 속에서 생기는 사람과 식물,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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