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잉글리시 쉽독

여름

by 조민성

얼마 전 올드 잉글리시 쉽독을 다시 친정으로 데려다주려던 날 개가 사라졌다.

항상 저녁 사진은 실제보다 훨씬 밝게 찍힌다

해가 질 무렵 다시 데리러 갔더니 농장 입구로 나와있었다.

그날 사라지지 않았다면 훨씬 일찍 이별했을 텐데 덕분에 열흘 정도는 더 벌었다.

어느덧 몇 년을 같이 지냈었는데 마지막이 별로 깔끔하진 못했던 것 같았다.

내가 의외로 별 말이 없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렇게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갔었다.

이미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던 후라 같이 지내던 며칠이 썩 편치 않았었다.

이 아이는 처음 데려오던 당시 며칠에 걸쳐 11마리 중 가장 순하고 나를 잘 따르던 애를 데려온 건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독이었나 싶다.

처음 볼 때부터 이상하게 나를 잘 따르던 모습이 참 기특했는데 그게 은연중에 다른 개들을 몰아내고 있는 걸 몰랐다.

잉글리시 쉽독 치고는 덩치가 작아 친정집에서 치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했었는데 그건 그냥 내 기준에서 했던 생각이었고 여전히 대형견으로 그동안 억눌린 권력을 더 작은 개들 위에서 누리고 있었다.

특유의 순한 천성이 다른 개들을 짓누르는 난폭한 이면을 가려준 덕택에 작은 개들이 점점 더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이유를 늦게 알아차렸다.

비글은 차라리 아예 벗어나 돌아다니기라도 했지 다른 애들은 멀리 가지도 못하고 내게 가까이 있지도 못한 채로 주변을 맴돌기만 했었다.

개들의 행동은 참 원초적이다.

주인의 옆에 있고싶고 더 애정을 바랄수록 주변의 경쟁자들을 몰아내고 싶어 한다.

쉽독의 경우에는 그럴 신체능력이 따라준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케이스다.

한정된 파이 속에서 어느 하나의 성취는 다른 하나의 박탈을 의미한다.

간단한 산수인데 여태 몰랐던 나도 참 멍청하다.

쉽독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셀티는 지금 며칠 째 다른 개들의 보복을 당하고 있다.

원래 악당보다 앞잡이가 더 미운 법이다.

쉽독이 흘리는 권력을 주워 먹던 셀티를 보며 다른 애들은 얼마나 이를 갈았을까.

웰시코기가 그 짧은 다리로 셀티를 쫓아가며 물어뜯던 어제 광경에 둘 다 참 안쓰러웠다.

친정집에 도착했던 쉽독은 망각의 방으로 옮겨졌다.

자업자득이랄까, 그 안에는 먼저 와있는 비글이 살이 토실토실 오른 모습으로 반겨줬다.

비글을 본 순간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는지 대성통곡하듯 울부짖었지만 한두 달 지나면 곧 나도 잊고 다시 새로운 서열에 익숙해지리라.

쉽독이 친정으로 다시 보내지고 셀티가 언니들에게 보복을 당하는 며칠 동안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해결된 것 같지만 사자가 없는 자리엔 여우가 왕이 되고 그때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개들의 무리 생활은 사람의 그것과 참 비슷해서 징그러우면서도 희극적이다.

알량한 권력 다툼과 같잖은 서열을 보고 있으면 군생활할 때 생각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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