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라 알파독

여름

by 조민성

외부 일로 바빠지는 여름에는 개들을 데리고 농장에 가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

개들은 산에 가는 걸 좋아한다.

내가 트래킹화 신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알고 벌써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슬리퍼 끌고 나오는 소리에는 시큰둥해한다.

얘네도 나이를 먹으며 새끼일 때보다 훨씬 활동량이 줄었다지만 지루한 마당에서 며칠 지내고 나면 산과 숲의 모든 걸 열정적으로 대한다.

가만히 지켜보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을 참 맛있게 보내는 것 같다.

같이 농장을 거니는 동안 내가 꽃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잠시 관심을 보이다가도 금세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린다.

쫓아다니기 좋은 개구리나 산새들이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꽃을 보고 있을 이유가 없나 보다.

며칠 동안 농장에 데려가지 못한 저녁에 갑갑해하는 개들을 임시방편으로 옥상에 데려갔다.

다섯 마리일 때는 옥상을 똥밭으로 만들까 봐 데려가질 못했는데 얼마 만에 온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 쉽독은 옥상에 올라오면 보란 듯이 묵직한 흔적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었는데 그런 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어필했던 것 같다.

옛날 동물 실험에서 검사해보니 무리 생활을 하는 집단 중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개체는 그 집단의 알파였다고 한다.

강한 척하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한 무리의 알파독은 지위를 뺏길까 봐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무리에게 강박적으로 알린다.

그 실험이 우리 개들에게도 적용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올라올 때마다 쉽독이 열심히 비벼대던 흔적들을 지우느라 지쳐 옥상을 폐쇄했었다.

얘네는 어떻게 하나 잠깐 지켜보니 서울에서 옮겨온 후 여태 정리 안 된 잡동사니들과 몇 안 되는 꽃들을 킁킁거리다 시큰둥하게 배회하기 시작했다.

숲에 비하면 흥미를 끄는 게 있나,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막혀있으니 영 재미없어하는 듯했다.

얘네가 본다한들 관심이나 가지겠냐마는 벽 너머 보이는 야경이 썩 나쁘진 않아서 혼자 보고 있었다.

10년 전쯤에는 노을이 지면서부터 완전히 어둠에 감싸일 때까지 앉아서 지켜본 적도 있었는데 이젠 마음에 그럴 공간이 없는 듯하다.

낑낑거리는 소리에 내려다보니 개들이 갈피를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지금의 알파독은 무능해서 귀여운 것 밖에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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