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못하는 말들

여름

by 조민성


"오늘은 그냥 쉴까요?"


마감이 덜 된 창가에서 불어난 강물을 말없이 보고 있던 목수 형님을 잠깐 지켜보다 내가 먼저 말했다.



"어차피 어제 혼자 계속 작업해서 어깨도 좀 안 좋아요."


꼭두새벽부터 서울에서 넘어온 자신보다, 일도 안될 것 같은 날 바쁜 동생을 아침 일찍부터 불러낸 게 미안해 그럴듯한 핑계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어제 어디까지 해놨어?"


"천장 단열은 끝냈는데 마감재가 없어서 다시 주문 넣었어요. 어차피 자재 올 때까지 작업 못해요."


저 혼자 작업할 분량은 있어요- 라는 말은 쉬고 싶은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형님의 표정 속에 같이 묻어뒀다.



"오늘도 애들 가르치러 가?"


"이따 저녁에요."


"그럼 내일 하자."


"네. 푹 쉬시고요."


어차피 지붕 아래서 하는 일이고 당분간은 계속 오늘만큼 쏟아진다고 하니 이런 핑계도 오늘까지다.




비가 오기 시작한 지 3주 째로 접어들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첫 주는 오랜만에 찾아온 쉴 핑계였지만 두 번째 주부터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저께 만났던 건축사 사장은 얼굴빛이 먹구름을 닮아 있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벌써 2주째 쉬고 있는 직원들이 다음 주도 쉬어야 한다고 했다.

폰만 하릴없이 만지고 있는 직원들에게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숨통이 트였다.

계속 내린 비로 계곡물을 넘어가는 길이 망가졌다.

어째 아슬아슬해 보여서 시공할 때 조금 더 높이자고 말했었건만 뒷산 아재는 자꾸 괜찮다는 말만 했었다.

비가 오면 흙이 물을 먹으며 바위들을 밀어낸다.

석축들이 틀어지는 모습을 보니 겨울쯤에 길을 한번 더 보수해야 할 듯싶다.

전봇대에 어느샌가 계량기가 달렸다.

당분간은 쓸 일이 전혀 없는데 새 거라서 반짝거리는 모습에 휴대폰 충전기라도 꽂아보고 싶다.

앞으로 한 달은 더 비가 계속 내린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실내에서 할 일들이 쌓여있지만 역시 지루한 계절이다.

마당에서 무기력하게 비를 피하고 있던 개들을 구해줬다.

언제까지고 숨어있을게 아니라면 차라리 비를 맞을 때가 더 나을 때도 있다.

어차피 묻을 빗물인 데다 날이 조금만 개어도 생각보다 빨리 마른다

비가 오면서 나무들이 부쩍 더 자란 것 같다.

어쩌면 2년 정도만 더 지나도 내가 다루지 못할 정도로 굵어질 것 같다.

손수레 주변의 풀은 바퀴가 멈춘 만큼 자라 있다.

통나무집으로 가는 길을 오랫동안 손보지 않았더니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이 길을 차로 올라가곤 했었는데.

여름 동안 풀이 하도 자라나는 게 잘라놓은 통나무에서도 싹이 자랄 것 같다.

혹시나 뭉쳐서 썩어갈까 봐 바닥에 있는 톱밥들을 정리해줬었다.

그래도 합판 자체가 노출용이 아닌지라 금세 빗물을 먹고 이끼를 키운다.

지붕 시공이 끝나면 면을 한번 갈아내야지.

올여름에 사놓고 몇 번 쓰지도 못했던 끌인데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같다.

원래 목재는 스스로 수분을 흡수하고 배출하기 때문에 시공하는 동안 비를 맞는 정도는 크게 상관없다는 게 정설이다.

3주 내내 비가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조금 다르려나.

하나씩 들춰보던 통나무에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내 몸에도 생기는 거 아닌가 싶어 괜히 옷을 털어봤다.

원래 시공 후 남는 목재들로 의자와 테이블을 만드려고 했었다.

이끼만 갈아내고 나면 쓸 수 있겠지.

뜻 밖에도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 수국이 정말 잘 자라고 있다.

올여름이 이럴 줄 알았으면 한참 더 심을 걸 그랬나 보다.

비가 오는 만큼 숲의 식물들은 생기를 찾는다.

숲이라는 자체가 수분을 매개로 얽히고설켜 이어지는 거대한 유기체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을 생물 중 가장 진화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계절마다 휘청휘청 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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