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왔어요

가을

by 조민성

지구력이 떨어져서 꽃을 보고 있기가 힘들다.

매년 여름이 한창 깊어지는 7월 정도가 되면 이 증상이 시작된다.

특히 길가에 심어져 눈에 강제로 들어오는 이국적인 색들은 피로도를 더 가중시킨다.

관심을 가져달라고 발버둥 치는 듯 노골적이고 탁한 화려함들은 흔히 질린다는 느낌보다 더 실제로 숨을 턱 막는 기분이다.

춥고 긴 겨울 동안 알록달록한 색들을 그렇게도 그리워했었는데 이제는 배가 불렀음이다.

같은 핑크색이지만 투명도가 있는 물봉선의 색은 묘하게 그 피로도가 적다.

야생의 꽃은 생태계 소비자의 고충을 알고 있는 걸까.

혹은 어쩌면 야생에서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주는 꽃들은 이미 선택에서 밀려나 사라진 지 오래 일지도 모른다.

억지스러운 건 늘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

조금은 어두운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 9월의 야생화를 만났다.

하얗고 투명한 옥잠화의 꽃은 내게서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색이다.

기분 좋게 향긋한 비누향을 품은 그 꽃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피는 시기를 잘 알아둬야 한다.

이미 꽃이 지고 나서 한참 뒤에야 이미 피고 저버렸다는 걸 알아버린 적이 있다.

알게 모르게 숲이, 그리고 산 전체에서 노란색으로 빠지고 있다.

시공이 끝난 현장에서 마지막 날 기술자들이 각자의 짐을 챙겨 떠나고 나면 잘 지어진 건물인데도 휑하고 공허하게 느껴지곤 한다.

분명히 전날까지도 여기저기서 들리던 기계소리와 서로 바쁘게 복도 사이에서 비집고 다니던 기억이 그제야 어렴풋해진다.

숲 속 모두가 마지막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

뱀 조심, 벌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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