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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Jun 12. 2022

주관식. 정답을 찾아보시오

시선 6화 [물음표] by 선장

주간 <시선> 여섯 번째 주제는 '물음표' 입니다.



정답이 있다면



1. 학창시절 나는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반에서 제일 인기있는 여자 아이는 나를 가장 좋아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신기하고 의아한 일이다.



2. ‘애교’ 라는 이 부자연스러운 행위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무리 귀여운게 늘 새롭고 짜릿하다고 한들, 다 큰 성인이 부러 아이인 척 하고 이에 열광하는 문화는 범세계적인 행태는 아닌데.



3. 그 날 왜 너의 시간은 내 시간과 달랐을까? 왜 내 시간만 그렇게 빨리 갔을까


4. 눈썹 근육도 자라면서 변할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억울하게 생겼단다. 의아하며 발끈하자, 그가 재빨리 고쳐 말했다. 그는 내가 “억울한게 어울리게” 생겼단다. 다 눈썹 근육 때문이다. 나는 팔자눈썹을 아버지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았다.


휘몰아치던 사춘기에 이 눈썹이 퍽 거슬렸던 나는 눈썹칼과 족집게의 힘을 빌어 기어코 일자눈썹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표정을 지을 때 마다 이 망할 눈썹 근육이 다시 팔자눈썹을 만들어 내는거다. 사는대로 생겨진다지만, 이는 생긴대로 살게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억울하게 생긴 나는 참 큰일이다. 근육의 각도도 당당한 모양새로 변해갈 수 있을까?



5.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어디였을까? 그 선에 다른 사람들이 무수히 얽혀있는데 그걸 내가 감히 혼자 정할 수 있는걸까? 어느정도의 위치에 두어야 대부분이 수긍할까.


여태껏 나에게 그 선은 지나치게 냉정하고 확고했는데, 사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날이 갈 수록 흐려지고 뭉툭해졌다. 이해의 폭이 덟어진건지, 융통성이 생긴건지. 약해진건지, 비겁해진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6. 어쩌면 나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오기였을까?



7. 한 끗 차이는 어떤 포인트에 기인하는 걸까?

오지랖 넓은 것과 싹싹함, 예의바른 것과 비굴함, 시크함과 싸가지 없음, 쿨한 태도와 냉정한 태도, 그리고 솔직한 행동과 개념없는 행동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가 아주 예전에 나를 미묘하게 긁어 박혀있던 조그마한 미운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저 오늘 나의 전체적인 기분이 영 구렸을 수도 있고. 혹은 전날 밤 잠을 설쳤거나, 방금 먹은 점심이 불만족스러웠을 수도 있겠지?



8. 다른 누군가의 마음보다 우선시되는 내 마음이란 게 있는 걸까? 있다고 믿는 이들의 뻔뻔함은 자기방어에 불과할까?



9. 언젠가 사라질 감정도 소중한걸까?

가치가 있을까. 바로 곧 사라져 버린다면 어떨까? 얼마나 붙들고 있어야만 무시받지 못 할 감정이 되는 걸까? 결국 그 어떤 것의 중함은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따른 걸까?



10. 너와 같은 사람을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

참 많이 예뻐해줬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의 소중함을 몰라서, 자만하며 “미련 없다” 소리치고 다닌 지 몇 년 째. 그 뒤의 연애들이 자꾸 맥없이 져버리는 건 정말 그런 식으로의 예쁨을 받지 못해서인걸까?


사실 사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것이고, 어찌 보면 그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었을 텐데. 나는 왜 이리도 너의 방식에 맞춰져서 그 방식만이 옳고 정당한 사랑이라 느끼는지.


이런 이기적이고 속좁은 마음으로는 누구와도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다 놓아버리고 싶어진다.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느끼겠지. 어찌하면 좋을까?



11. 그렇다면 나는, 최근 애정을 쏟을 뻔 했던 그 사람에게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었을까?

쌀쌀맞은 말투,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열심히, 냉정하게 골라낸 가장 비수를 꽂을 수 있는 단어로 정떨어지게끔 했던 것은 나였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는 완전히 정 떼지도, 실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여전히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쥐고 있을 뿐이다. 조금만 더 흔적을, 여운을 느낄 틈이 필요한 것은 내가 그저 너무 외로워서일까?



12. 손가락 틈 사이로 흘려보낼까 흘러갈까? 정말 결국엔 흘러질 수 있을까, 고민해봤다. 쥐고 있는 채로 붙들고 있는 마음이 스스로 사라질 수 있다면야 좋겠다. 드디어 너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예뻐해줬던 그 사람을 이미 다 끝난 뒤에야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은 어쩌면 이리도 부질없을까.



13. 매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면, 내게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언제나 이해가 안 되는 모든 것에 있어서 설명을 바랐었다. 사실 모든게 설명이 되지는 않는 거였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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