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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Feb 05. 2023

감동에의 강요

시선 15화 [감동] by 색시

주간 <시선> 열다섯 번째 주제는 '감동'입니다.



선장, ’감동’이라는 단어는 내게 자동반사의 언어였어. 

무릎을 탁 치면 나도 모르게 다리가 스윽 들려지는 것처럼, 깜짝 놀랐을 때 엄마! 를 찾는 것처럼. 이렇다 할 사고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올 때에야 가치를 띄는 단어. 일종의 감탄사.


‘감동의 순간. 두터운 유리창 너머로 기를 쓰고 들어오던 오후의 볕과 이른 시간부터 켜져 있던 형광등 불빛이 뒤섞여 조금은 어지럽던 학원의 강의실, 그 구석자리에서 자율 학습을 하던 도중 들었던 음악을 오랜만에 찾아 듣는데 괜히 울컥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던 시절. ‘자유와 가능성’의 시간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순간들을 다시 내 눈앞에 데려다 놓는 음악의 마법은 역시 감동…’ 이건 최근 끄적인 글귀 하나. 


하지만 요즘, 이리도 순수하고 아름다운(그래야 할) 단어를 남용해야 할 듯한 부담의 순간들이 즐비하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에서 감동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입된 지점들에서 이 단어를 뱉도록 훈련되어 왔는지도 몰라. 그리고 그 바탕엔 어떤 ‘절대선’의 개념 역시 끼어들어있는 게 아닐까? (반대로 감동해선 안 되는 ‘절대악’의 개념 역시.)


예를 들어, ‘선물’이라는 게 참 그래. ‘선물을 받으면 감동해야 하는 것인가’ 설령 그게 나에게 0.1도 필요가 없는 것이었을지라도? 심지어 때로는 처치 곤란이 되어 시간 들여 중고마켓에 업로드할 사진 찍고 글을 적고 직거래하기 위해 발걸음 해야 하는데도? 중고거래의 모든 시간들 내내 선물을 준 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유감을 떠올린다. 고마움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게 ‘감동’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해.


하지만 어째 ‘선물 = 감동’이라는 공식이라도 나와 있는 양, 위의 생각들을 드러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취급을 받곤 해. 내 생각에 ‘선물 = 고마움 < 감동’(부등호는 집합 관계라고 해두자.)인데 말이야.


선물로써 감동처럼 깊이 있는 감정을 끌어내려면 노력이 깨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무얼 좋아하는지, 상대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인지, 상대의 취향은 어떤지, 콘셉트가 서프라이즈라면 상대가 전혀 생각도 못 했을 법한 유쾌한 게 무엇일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 생필품 중에 무얼 선물해 주면 좋을지, 내가 선물하고자 하는 생필품 중 내 형편에서 사줄 수 있는 가장 느낌 있는 상품은 무엇인지, 그마저 어려울만치 주머니 사정이 안 좋다면 어떤 구성으로 편지를 써주면 좋을지 등. 


상대의 이런 정성은 울림이 크고 깊은 감동을 불러오더라. 


선물을 해야 하니 하는 듯한 것들을 받고 나면 오버 조금 보태어 다리가 없는 이에게 운동화를 선물한 것 같은 상황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 그리고선 감동했다는 리액션이 없을 시 공감능력 상실한 바보로 몰고 가는 분위기. 안타까워. 기회가 된다면, ~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선장아.


다행히 내 주변은 내게서 자동반사의 감탄사를 끌어내기에 충분히 멋진 이들로 포진되어 있어, 널 포함하여.


그리고 또 다행히 내 피곤할 정도로 섬세한 감정 선의 하루하루들 역시 훗날 반추하다 스스로 감동받기에 최적이고. 아, 앞서 토로한 문제에 대하여 말인데, 나는 역시나 다행히 ‘억지로’ 무언갈 잘하지 않는 것 같다. 감동해야 할 순간들이 즐비하지만 그다지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성격도 아닌지라 속 편히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어.


그 왜, 1년 전 내 혼배성사 날 선장이 보낸 축하 메시지가 새겨진 주문 케이크와 편지, 선물은 특히 두고두고 감동 중인 거 알려나 모르겠네.




추천 음반 : ARASHI [This is AR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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