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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Feb 22. 2023

나쁜 남자가 가끔 잘해줄 때 너무 감동받지 말자.

시선 15화 [감동] by 선장

주간 <시선> 열다섯 번째 주제는 '감동'입니다.




색시야.

우리가 이 주제를 정한 지는 사실 한참 전이었지? 당시에 충분히 티를 낸 것 같아서 너도 느꼈겠지만 ‘감동’ 이라니, 색시가 ‘위로’를 주제로 써줬던 글이 바로 떠오르더라.


나는 언젠가부터 누구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어. 공감까진 바라지 않고 그저 나름의 수긍이면 될 텐데. 빤히 보이는, 피상적인 겉치레식 위로에 또 뻔히 실망하곤 했던 날들. 사실 이해해. 다들 자기 이야기에 골몰하기도 바쁜 세상이잖아. 남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고서야 재미없고 집중도 안 되잖아.


그럼에도, 그렇게 이해받지 못할걸 알면서도 요즘에는 종종  상황과 마음을 주변인들에게 늘어놓곤 했어. 특히나 내가 땅굴 파고 들어가 연락이 안될  가족이나 친구들이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어쩔   길게 넋두리를 풀어. 그러다 보면 나조차 존중하지 못하는 나를 네가 알아달라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 중 어떤 마음이 색시에게 닿았던 걸까? 색시가 골랐을 단어 하나하나 모두 뻔하지 않고 특별해서, 가장 내 마음에 가깝게 닿을 적합한 말을 골랐을 색시의 정성이 느껴져서 ‘감동’했어.




그리고는 ‘감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


어떻게 보면 조금 흔해빠지고 가벼워진 단어. 그 본질과는 다르게 자주 쓸수록 한없이 퇴색되곤 하는 단어.


그러니 언젠가부터 나도 자주 쓰지 않으려고 의식하게 되더라. '격한 감동'을 주는 신파영화는 취향이 아니거든. 같은 맥락으로 음악도 소몰이 창법은 사양이야. 그러니 나는 고마움에 벅찬 순간에도 '감동'의 과한 어감에 행여나 그 마음이 반감될까 염려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 단어 말고는 대체 불가능한 감정이 분명 있잖아. 이를테면 얼마 전, 그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을 때 느꼈던 감정도 분명 '감동'이었어.





그 사람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반려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시큰둥했어. 사진을 보여줘도 본체만체, 영혼 없는 톤으로 간단히 “귀엽네” 하는 게 끝이었지.


처음에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동물을 반려해본 적 없는 그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가긴 하더라. 나 역시 엄마가 된 친구들이 아이 사진을 여럿 보내주면 간혹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영혼 없는 그 “귀엽네”가 튀어나오곤 하니. 그래서 한두 번 이야기를 꺼낸 뒤에는 내 새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어. 그렇게 꽤 오랫동안 그와 나는 고양이를 주제로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았지.


그러다 일 년 남짓 지났을까, 작년 크리스마스.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카드를 건네줬는데 조금 웃음이 나버렸네. 어디서 어떻게 찾아낸 건지. 겉면 일러스트에 스치듯 말했던 내 반려묘의 특징을 그대로 닮은 고양이들이 한가득 그려져 있더라고.





감동했어.


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다정했던,   전에 만난 다른 사람에게는 받지 못한 종류의 ‘감동 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츤츤’ 거리다 가끔 ‘데레’하는 ‘츤데레남‘의 마음이 ‘온종일다정남’의 그것보다 더 깊고 크다고 생각하냐, 고 묻는다면 당연히 “전혀 아니.”


감동이라 함은 보통 ‘뜻밖에’, ‘기대치 못 한 상황’에서, 혹은 ‘기대했더라도 이를 훨씬 뛰어넘는 놀란 마음’이 전제되잖아. 예기치 못한 그 간극이 클수록 순간에 압도당하고 나는 이 순간을 ‘감동’이라 칭하게 되던데 이는 꼭 진심과 비례하진 않는 것 같아.


물론 평소에 워낙 무뚝뚝한 사람이 어쩌다 말 한마디 예쁘게 한다면 나는 ‘감동’을 받지만, 늘 다정하던 사람은 동일한 말을 하더라도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어쩌다 표현한 사람에게 격한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는 그저 의외성에서 발현된 '순간의 놀라움'일 뿐인 경우가 많더라.


나쁜 남자, 아니 나쁜 사람의 대명사 플레쳐 교수의 작은 당근과 지나친 채찍 <위플래쉬, 2015>



돌이켜보면 결국 꾸준히 마음을 줬던, 그래서 늘 예상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진심이 깊게 와닿아. 새삼 놀라기엔 일상이었던 따뜻함. 그래서 뻔뻔히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람.


꾸준한 마음은 결국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이라 부를 수 있겠지. 우리는 변치 않고 안정적인 사람에게 ‘순간의 감동’과 별개인 지속적이고 두터운 ‘사람에 대한 감동’을 갖게 되는 것 같아.


뜻밖의 행동에서 비롯된 찰나의 감동이 번뜩 들뜨게 만드는 도파민이라면, 평안함에서 오는 소소한 감동은 세로토닌과 결을 같이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물론 색시에게는 두 종류의 감동 모두 있어서 더욱 고마웠어).


그러니 서프라이즈가 짜릿한 건 사실이다만, 나쁜 남자가 가~끔 잘해준다고 너무 감동받지 말자. 츤데레 남자가 ‘츤츤’ 거리다가 가뭄에 콩 나듯 ‘데레’ 거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에 속지 말자. 찰나의 감동에 중독되지는 말자.


어젯밤 작고 무해한 나의 고양이가 잘 때 내는 쌕쌕거리는 소리에 새삼 감동한 것처럼, 나도 색시도 안정적인 따뜻함 속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





추천 영화: <위플래시, 2015>

무언가에 미쳐 도달한 장소 덕에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여태까지의 여정이 전부 정당화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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