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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Sep 18. 2022

네 단잠에 내가 함께 하기를

시선 12화 [위로] by 색시

주간 <시선> 열 두번째 주제는 '위로'입니다.





내가 앓아보지 않은 괴로움에 대해 위로하는 일은 어려워, 특히 뭣 모르고 뱉는 말이 네 고통의 둘레를 빙빙 돌며 약 올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모든 언행이 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를 숱하게 겪다 보니 이제는 걱정이 앞서. 


선장, 요즘은 어때?


내게 말 못 하는 이야기들도 많을 거라 생각해 네가 얘기하는 ‘그냥 잠이 안 와’의 ‘그냥’에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사연들이 묻혀 있겠지. 심신이 모두 지치고 건조해져 부서져내리는 듯한 새벽엔 종종 너를 떠올려. 선장은 어떤 새벽을 보내고 있을까, 2시 그리고 5시 때론 4시와 7시 세상과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한 너의 메시지들은 새벽을 잊게 할 때가 있었지. 마치 6천 마일 거리의 시차를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겨우 2마일 남짓 떨어져 있는데…


집 주변의 공사 소음으로 인해 오전 9시면 머리맡의 귀마개를 더듬거려 찾는 L을 볼 때에도 드문드문 너를 떠올려. 모든 소음을 차단하는 건 기본이라 매일 귀마개를 하고 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선장 앞에서 나는 철부지 어린이가 된 것 같기도 해. 하루 종일 흙바닥에서 뒹굴고 들어와서는 기진맥진하여 세상모르고 자는, 열린 문 너머 거실의 시끄러운 텔레비전 소리에도 잘만 자는 어린아이. 너의 그 예민함이 생각 깊은 어른의 상징인 것 같아 멋지고 부러우면서도 역시 걱정돼. 


내가 십여 년 동안 음악만 갖고 투닥거리지 말고 이런저런 공부들을 많이 해놓았어야 하는데 싶은 거 있지? 네가 어려운 순간마다 내가 천의 기지를 발휘해 때론 의사선생님이, 때론 심리상담사가, 때론 통이 큰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이제 선장을 알게 된 지 겨우 20년 남짓 되었으니까 앞으로 차근차근 더 알아가다 보면 내가 너에게, 크나큰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주로 나보다 윗 사람들에게, 내가 힘들어하는 분야에서 몇 번이고 먼저 힘들어본 이들에게 위로를 받곤 하다 보니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로해 줄 수 있으려면 각양각색의 경험치를 쌓은, 지금보다 꽤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사랑의 힘은 역시 대단해. 내가 네 위로를 위해 내일을 계획하며 열심히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고,  이 짤막한 편지 한 면이 소박하게나마 이른 위로가 되길 바라며. 오늘 밤은 평소보다 깊은 잠에 들 수 있길 기도해.






추천 음반 : Keith Jarrett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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