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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May 21. 2022

본업 : 토끼주인

시선 4화 [소중] by 색시

주간 <시선> 네 번째 주제는 '소중'입니다



선장, 선선한 가을바람이 좋아 집 안의 창이란 창은 전부 열어놓고 있었다. 소중하기 위한 조건에 대하여 생각하던 중 뇌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어. 시간과 마음에 대한 등가교환이 기가 막힌 것, 부재중이거나 분실 시에 꽤나 괴로운 것, 아끼는 마음.. 따위의 생각들이 거센 빗소리에 둘러싸인다. 빗소리가 너무 커져 머리가 울린다. 아차, 빗물이 들이치겠구나 싶어 온 집안 뛰어다니며 창문들을 전부 걸어 잠그고, 누가 일부러 뿌려놓은 듯 비가 들이친 창가와 그 위의 오브제들, 장판의 물기를 걸레로 훔치고 나니 그새 힘이 빠진 걸까, 빗소리가 삼켜버린 걸까. 소중함의 본질에 대해 소란스레 세워놓던 내 상념들이 축 늘어져 고요해졌다.


소중함이란, 소중해지려면, 소중한 것들을 소중히 하려면…


그래서 말인데 내 소중한 선장아, 엊그제 네가 카페에서 얘기했던 대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해. 진부할 수 있지만 비 내리는 동안은 우선.


애착이 있는 것들엔 이름을 지어놓고 은밀하게 부르곤 해. 하나같이 ~토끼로 끝나도록 작명을 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토끼여서겠지. 왜 ‘겠지’냐 하면 이 취향의 형성 과정이 딱히 주체적이진 않아서다. 기억이 닿는 유년 시절부터 우리 오빠가 나를 토끼라고 불렀거든. 토끼 이리 와봐, 토끼 밥 먹자. 토끼 소리 내봐. 하고. 그게 꽤 마음에 들었나 봐, 아끼는 물건에 나를 투영시키는 방법으로 선택한 걸 보면.


영혼의 한 조각과도 같던 내 첫 아이팟 클래식 120기가의 이름은 잿빛토끼였다. 에코붐 시대 후기 출생임에도 전자기기와 친하질 않아서 처음에 애를 많이 먹었지. 애플 아이튠즈 동기화와 이름 등록에 겨우 성공하고 화면 좌측 상단에 ‘잿빛토끼’라는 네 글자가 떠올랐을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2009년이었지 아마. 재수생의 지갑은 언제나 가벼웠지만 모으고 모은 용돈으로 잿빛토끼 케이스도 몇 개 사 입혔다. 검은색의 본체도 충분히 매끈했지만 Belki**에서 나온 보라색 케이스가 정말 예뻤어. 입시 기간 동안 가족, 친구, 선생님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합친 것보다 잿빛토끼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더 많이 들었으니 어지간히 소중한 물건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그 소중한 첫 토끼 귀가 쳐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길래 병원도 몇 번 다녀왔건만 인간이든 전자기기든 노화는 피해 갈 수 없었나 봐. 요즘은 그 시절의 플레이리스트가 유독 그리울 때 생명줄(충전기) 연결하여 잠시 깨워놓은 채로 몇 곡 돌려 듣고 다시 안락한 서랍 구석에 눕힌다. 가장 위태롭던 시절 나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담고 있는 소중한 물건이야.


잿빛토끼처럼 물건의 색깔을 앞서 붙이는 게 가장 보편적이다. 처음 샀던 스마트폰은 하얀색이어서 우유토끼, 현재 사용 중인 건 검은색이라 흑토끼. 가장 열심히 기록했던 스무 살의 일기장은 갈색토끼.


이외엔 작명 당시 떠오르는 단어들을 그냥 붙인다. 14년째 함께하고 있는 내 업라이트 피아노는 엄마토끼인데, 신시사이저인 nor* stage 76 기기를 들여놓으며 상대적으로 커다랗고 오래된 업라이트가 엄마가 된 것. (그런데 nor*는 그냥 빨강토끼다. 빨간색이어서.)


스물다섯, 그동안 모은 돈으로 면허 따고 구입한 첫 차는 대뜸 재즈토끼가 되었다. 잿빛이라 잿빛토끼라 하고 싶었으나 이미 등록된 이름이고, 아쉬운 마음에 읊조리다 잿빛 재앳빛 재애- 재즈로 이어진 건지, 그냥 2015년 6월 즈음 재즈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싹트기 시작해서 단어에도 꽂혀 있던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지어놓고 보니 재즈토끼는 정말 jazzy 하긴 하다. 핸들링이 묵직한 게 꼭 존 콜트레인의 테너 색소폰 소리 같고, 준중형임에도 차체가 무거워서인지 내 난폭운전 때문인지 영 시원찮은 연비는 재즈 공연의 관객 수 같다. 대중성이라곤 없는 아쉬운 숫자..


아끼는 물건들에 토끼를 붙여 부르는 나를 다시 토끼! 하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유년 시절의 우리 친오빠 말고 현재의 우리 오빠인 내 남편. 모든 토끼들을 다 내놓더라도 못 바꿀 유일한 존재이자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토끼! 하고 불리니 나도 그에게 꽤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좋아. 내가 색시이니 가끔 색시토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그냥 ‘토끼’라 한다. 토끼 왜 안 와? 토끼 배고프지? 토끼 뭐 먹을까? 하고.


독립을 하고 이사를 하고 신혼집으로 두 집 살림을 합치는 중에도 서랍 한편에 반듯이 누여 놓는 잿빛토끼와 갈색토끼, 언제 어디든 끌어안고 다니며 혹여 다칠까 튼실한 겉옷 챙겨 입혀주는 흑토끼, 여전히 내 수줍은 꿈들 제일 많이 공유하며 매일같이 쓰다듬어주는 엄마토끼, 지금은 본가에서 쉬고 있지만 그동안의 내 국내 여행들 함께하며 추억 쌓고 큰돈 들여 매년 건강검진 시켜주는 재즈토끼. 내가 소중한 걸 소중히 하는 방식들.


중히 여겨 있는 그대로 보존하며 아끼고, 책임진다.  


‘책임지는 것’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견해라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진 모르겠다. 소중하니 무엇보다 아낀다고들 말하지만 아끼는 방식, 아끼며 공존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겠지. 물건이든 사람이든 얼마든지 찾아오는 권태로운 순간에도 한결같이 사랑하며 마음에서 내치지 않고 품는 것. 무언가가 소중해지는 과정 못지않게 그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하는 태도, 자세, 다시 말해 그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 중하지 않을까. 그 정신에 대한 자신을 갖고 남편을 가장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지금껏 토끼들을 키워오며 예습했으니 어느 정도는 숙련되어 있겠지?


뇌우가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화창함에도 상념을 마저 이어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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