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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pr 02. 2023

"미안해"에 대한 답변으로 옳은 것은?

시선 18화 [느낌표] by 선장

주간 <시선> 열여덟 번째 주제는 '느낌표'입니다.



얼마 전 물음표에 이어 이번 주제는 느낌표네!


물음표와는 달리 느낌표를 직접 입력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아. 회사에 다닐 땐 “넵!”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남발하곤 했는데. 그러고 보면 문학이나 대본이 아닌 누군가와의 소통에서 느낌표를 읽은 적 역시 최근엔 드문 일이었어.


사실 목소리를 키울 때는 의도와 상관없이 조절이 안 될 때가 많잖아. 이를 직접 일일이 눌러서 전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순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해.  반사적으로 내는 소리와 달리 느낌표를 문자로 입력하는 일은 의지 안에 둘 수 있으니.


격앙된 감정을 투명하게 내비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화났어도 되레 침착한 척 마침표를 찍으면 찍었지, 굳이 느낌표를 찍지 않아. 통제를 벗어난 과잉된 감정은 어설프고 미숙해 보이니까. 마치 지는 느낌이거든.


그러니 굳이 느낌표를 쓴다면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는 흥분 상태’ 일 때에 쓰게 되는 것 같아. 그래서 물음표와는 달리 느낌표에는 유독 ‘밝음’이 전제돼 있어. 물론 이 역시 ‘의도적인 밝음’이지만. 누군가와의 온라인 대화 속 느낌표가 내게 유독 생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작위성 때문인 듯해.




사실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 자연히 느낌표가 떠오르는 순간은 조금 결이 달라.


이를테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험의 합격 결과를 봤을 때.

기막힐 정도로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뿌옇던 논리에 갑작스레 가닥이 잡힐 때.


또 아침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는데 불안함이 엄습할 때도 있지.

그리고 찝찝할 만치 개운해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면 느낌표가 여럿.


‘!!’


만약 전날 밤 술과 함께해 타임워프라도 일어났다면 물음표도 함께 자동으로 붙어.


‘?!!’    




“‘양년아’라고 했잖아요, 제가 여동생한테.”


“…?!!!”


며칠 전, 지인이 다소 거친 표현을 할 때에도 내 머릿속에 물음표와 동시에 수많은 느낌표가 떴어. 지인의 여동생이 아침식사로 한식이 아닌 양식을 선호한다는 일상적이고 가벼운 수다 중이었지.


내게 자주 “죽을래?” 혹은 “얻어 맞을래?” 라며 투박한 애정표현을 뱉던 그였지만, ‘양년’이라는 표현까지 익숙한 척 넘기기엔 내 허들이 조금 높았나 봐.


그런데 '양년', 그 날것의 표현에 당황해 휘둥그레진 내 눈을 보고 그는 되레 물음표를 머리에 띄운 표정을 짓는 거야. 그리고는 서울에서 곱게 자란 나는 뭘 모른다며 대수롭지 않게 웃더라. 다시 한번, 물음표와 다수의 느낌표가 떴어. 그렇게 나는 털털함이라곤 1도 모르는 서울깍쟁이가 돼버렸고.


이처럼 최근 나름의 느낌표가 머리에 찍혔던 순간이 몇 떠오르네. 또 한 번은 1년 남짓 친하게 지낸 친구와 사소한 갈등이 생겼을 때였는데, 친구가 긴 대화 끝에 사과를 해 줬어. “미안해.” 라며 진심으로 진솔하게.


그제야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나는 되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니야.”라고 답했지. 그리고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을까. 머쓱한 모양새로 마음이 누그러지던 내게 그가 뜻밖의 말을 꺼냈어. 다소 불편한 얼굴과 빈정 상한 말투로.


“그냥 좀...사과 받아주면 안 돼?”


"!"


놀랐어. 내게 “아니야.” 는 곧 “아니야, 네가 미안할 필요 없어. 나도 잘못했는걸.”이라는 겸양의 자세를 내포하고 있던 반면, 그에겐 진심 어린 사과에의 거부로 받아들여졌나 봐.


이 별거 아닌 소통 오류에 느낌표가 또다시 띠링! 하고 뜨더라. “미안해”에 넙죽 “응.”이라고 답하는 건 나한테  “그럼. 당연히 미안해야지.”라는 의미였는데.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는 뉘앙스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의무적인 관계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단단한 우물 안에 갇혀 있었나 .  우물 밖에 나가본 경험이 있었다는 이유를 위안 삼으며 한없이 좁아진  사회적 울타리를 유연하다 착각했어.


특정 성향만을 걸러내 좁아진 내 세계에선 화법 역시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 텐데 말야. 모두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 한들, 우리 안에서는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같은 말 속 수많은 뉘앙스를 알아챌 기민함도, 이를 포용할 융통성도 줄었어. 아차, 싶더라.


색시가 느낌표를 떠올린 순간은 언제였을지 궁금하네. 부디 긍정의 느낌표로 가득 차 있는 글이길 기대해.




추천 작품: <질투의 화신, 2016>

"자기 인생에 물음표 던지지 마. 그냥 느낌표만 딱 던져. 물음표랑 느낌표 섞어서 던지는 건 더 나쁘고. 난 될 거다. 이번엔 꼭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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