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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위에 새겨진 도시의 기억

대구근대역사관

by citevoix




대구 중앙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도시의 풍경을 압도하는 짙은 벽돌 건물이 시선을 붙든다. 기단은 묵직하고 입면은 대칭을 이루며 아치형 창과 기둥은 질서를 말한다. 지금은 대구근대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건축은 처음부터 기억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1932년, 일제는 이 건물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세워 운영하다 해방 이후 한국산업은행으로 기능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2011년, 도시의 과거를 담는 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기능을 달라졌지만 도시를 둘러싼 권력과 제도의 흔적은 여전히 이 공간에 스며 있다.



역사적으로 이 일대는 대구의 '중심'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대구우체국, 경찰서, 법원, 식산은행 등 식민지 도시의 핵심 인프라가 집중되었다. 행정과 금융, 통신 기능이 교차하는 이곳은 한 도시가 근대국가로 편입되는 통로였고 동시에 권력과 질서가 시각화된 장소였다. 도시가 어떤 식으로 중심을 설정하는지, 그 중심이 누구의 질서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실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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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늘 말을 한다. 식산은행은 일제가 산업과 금융을 통합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으로 지역 지점은 식민지 수탈 구조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이 은행은 단순한 금융기관을 넘어서 산업과 상업, 도시계획 전반에 영향을 미친 거점이었다. 이러한 배경에 건축 언어 역시 권위와 통제를 외형으로 말한다. 돌출된 입구는 위계를 설정하고 대칭 구조는 질서를 부여하며 두꺼운 기단과 벽은 견고함과 차가움을 강조한다. 당시 제국은 도시를 기계처럼 설계했고, 그 속에서 사람은 계층화된 질서 안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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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상징화하던 건축은 시간이 흐른 지금 완전히 다른 감각을 느끼게 한다. 건축은 외관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내부는 완전히 새롭게 구성되었다. 1층은 대구의 근대 산업과 생활사를, 2층은 일제강정기와 해방 이후의 도시 변화를 담는 전시 구성으로 시간의 켜를 담은 스토리를 써 내려간다. 특히 중앙 계단은 당시의 구조를 남긴 채, 시대 간 흐름을 이어주는 축이 되었다. 과거의 동선이 현재의 감각으로 재해석되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방문객은 시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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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요소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감정과 논리를 품고 있다. 높은 천장은 권위를, 두꺼운 벽은 안전과 통제를, 외벽의 리듬은 질서를 말한다. 그런 상징들이 이제는 시민의 일상과 접속하는 방식으로 재배치되었다. 역사관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이 공간은 거대한 서사의 박제가 아닌 일상의 언어로 도시를 다시 읽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건물은 단지 보존의 대상이 아니다. 근대 도시의 탄생과 산업화, 탈산업 시대의 전환까지 하나의 공간 안에 시간의 파편들이 공존하고 있다.


기억은 때로 장소에 기대어 말을 건다. 대구라는 도시가 겪은 산업과 저항, 일상과 변화가 이곳에 축적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도시를 감각하는 창 같은 역할을 한다. 건축이 도시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식은 단지 형태의 보존이 아니라 기능과 감각의 전환에 있다. 대구근대역사관은 과거의 건축 언어를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도시민과 관계 맺는 법을 보여준다. 이는 도시 안에서 '기억을 거주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다. 다시 말해, 이곳은 과거를 박제하는 곳이 아닌 도시의 시간이 현재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장소의 역할을 한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화-일 09:00-18:00(매주 월요일 휴무)


- 주차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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